선화사 대웅전은 화엄사보다 작지만 요왕조때 먼저 지어진 건축물
세속권력과 종교의 긴장된 관계를 생각하며 절 참관을 마치고 부근의 구룡벽으로 갔다. 따퉁의 구룡벽은 명태조 주원장의 13子 朱桂 왕부 앞에 있는 가림 담벽 즉 조벽이다.

한족의 전통건축양식인 사합원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조벽이라는 시선을 가로막는 벽이 세워져 있고 보통 90도로 각도를 틀어야 집안으로 연결된다. 마찬가지로 왕부( 왕궁 ) 도 왕을 상징하는 용의 도안으로 만든 거대한 담벽을 만들게 된다. 주계의 왕부는 건축규모가 방대하고 기세가 웅혼했다고 한다. 각종 전각들은 북에서 남으로 배치되었고 장방형 구조를 보이며 이 건축군의 중심 축선상에 구룡벽이 있다. 왕부 내에는 수많은 전각들이 건축되었고 전체 건축물은 금빛 찬란하고 호화스럽기 그지없었으며 부지면적은 무려 17만5950평방m에 달했다고 한다. 명조 말년 ( 1644년 ) 戰禍로 왕부는 모두 파괴되었으나 구룡벽은 좀 떨어져 있어 원형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이 구룡벽은 동서길이가 45.5미터이고 벽의 높이는 8m, 두께는 2.02m로 중국에서 현존하는 구룡벽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건축연대가 가장 앞선 용벽으로 중국 구룡벽의 으뜸으로 불린다. 벽에는 모두 9마리의 비룡이 새겨져 있고 양 측면엔 일월 도안이 있다. 또 이 벽면은 모두 426개의 특별히 제작한 오색유리로 만들어졌다.…

이곳을 나와 선화사로 갔다. 선화사는 화엄사보다 초건연대가 더 빠르다. 기원 700년대 초건된 이 절 역시 여러 차례 중건되었으나 사원의 규모는 화엄사보다 훨씬 작다. 절의 구조는 간단하여 산문을 들어서면 사천왕상과 이어 좌우에 지혜의 화신인 문수보살과 행동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이 병립했고 다음이 대웅전이다.

사원은 축선을 따라 산문 ( 혹은 천왕전 ), 삼성전, 대웅전으로 이어져 있고 대웅전의 좌우에는 관음전과 지장전이 병립해 있다. 대웅전은 선화사의 중심 불전이고 전내에 五尊 금존여래불상이 있고, 이를 사람들은 五方佛이라고 부른다. 오방불은 바로 금왕조의 원작이고, 대웅전은 선화사의 전각 중 유일하게 전화에서 파괴되지 않은 요대의 건축이다. 三聖殿은 선화사의 중간 전각으로 전내에 “화엄삼성”을 봉안하고 있다. 삼성전은 금왕조인 1128년 건축되었고, 가운데 석가모니불 우측에는 보현보살, 좌측에는 문수보살의 입상이 서있다.
선화사를 참관한 것으로 오늘 공식적 관광을 끝내다. 절을 나와 바깥의 벤치에서 좀 휴식을 취하다. 공기가 맑고 아주 시원하다. 절 입구의 공터는 흡사 서울의 종묘 공원앞 광장에서처럼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즐기고 있다. 바로 옆에는 시안의 성벽처럼 높고 거대한 성벽이 아주 길게 이어져 있다. 귀로에 기차역에 들러 모레 내몽골의 후허하오트로 가는 기차표를 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