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란 사찰명은 불교경전서 유래… 전각 모두가 동향배치 눈길 끌어

지금 따퉁의 중심지역은 거대한 공사장이었다. 거대한 성벽은 시안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고 성벽 바로 옆에 명성이 중국 전역에 자자한 화엄사가 자리잡고 있다. 11세기에 초건된 것으로 알려진 이 사찰은 이미 1천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중건되었다. 그러나 초건연대는 확정적인 것이 아니고 몇 가지 다른 견해도 제시되고 있다. 한 가지 설은 당대에, 다른 한 설은 북위시대에 초건되었다는 것이나 현재 학계에서 광범하게 인정을 받고 있는 견해는 요왕조 시기인 1062년 건축되었다는 것이다. 사찰은 요나라의 황실 종묘의 특성도 갖고 있어 당시 화옌쓰의 지위와 위신은 아주 높았다고 한다. 이후 전란으로 절이 파괴되고 금왕조인 1140년 중건되었고 이후에도 잦은 전란으로 여러 차례 파괴되고 중수되는 과정을 반복해왔다. 이 사원에서 가장 중요한 전각은 대웅보전과 박가교장전이다. 명조 중엽부터 화엄사는 상, 하 두 개의 절로 나뉘어졌으나 신중국이 건국된 후 1963년부터는 상화엄사, 하화엄사를 합쳐 다시 하나의 화엄사로 환원하였다. 화엄사의 이름은 바로 불교경전 화엄경에 나오는 “慈悲之華, 必結莊嚴之果”(자비의 광채는 반드시 장엄한 결과를 맺는다) 라는 대승불교의 교의에 의해 명명되었다. 사원의 건물은 서에서 동으로 山門, 보광명전, 대웅보전, 박가교장전, 화엄보탑 등 30여채의 건축물이 각각 남과 북 2개의 축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배치가 엄밀하고 규모가 거대하다.

사원의 부지면적은 66,000평방미터이고 중국에서는 연대가 비교적 이르고 보존상태가 아주 양호한 하나의 요금 시절의 사원건축물이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기록에 의하면 요왕조 시기 불교 종파 가운데 화엄종이 특히 성행했으며 이러한 시대적 기운과 흐름에 의해 사찰이 축조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차례에 걸친 파괴와 복구를 거듭한 가운데 중국은 2008년 거액의 자금을 투자하여 화엄사에 대한 대대적인 복구를 통해 요금 시절의 화엄사의 위세높고 명성이 자자한 거찰로 거듭 나게 하였다.

현재 2개의 절이 비록 하나로 통합되었지만 여전히 각자가 하나의 主殿을 중심으로 각종 전각이 배치된 특성을 갖고 있다. 上寺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山門과 관음각, 지장각 등 주요 전각이 배치되어 있고, 下寺는 박가교장전을 중심으로 요왕조 시기의 소상, 석경당, 누각식 藏經 및 천궁누각이 배치되어 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절의 주요한 모든 전각이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거란족이 귀신을 믿고 태양을 숭배하는, 동쪽 방향에 높은 의미를 부여하는 종교신앙과 거주 습속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화엄사내의 화엄보탑은 목탑으로 순 목재를 짜맞추기식으로 건립한 방형의 목탑으로 높이는 43m에 이른다. 특히 탑 아래에는 500평방m의 넓이로 축조된 천불지궁은 약 1백톤의 순동을 사용하여 만든 것으로 내부에는 원대의 고승대덕의 사리와 천존불상이 금빛 찬란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는 불교불상의 새로운 해석으로 전통과 현대미가 조화된 화려함의 극치라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