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L이 큰적자 내며 파산하자 당시 정권 요청으로 무보수 회장직 맡아 살려내
원예육종학 우장춘 박사의 사위… 자신의 철학 전승 세이와주쿠 한국에 설립

일본 교세라 그룹을 창업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파산한 일본항공(JAL)을 재건해 '경영의 신(神)'으로 통하던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창업주·명예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90세.
교세라는 이나모리 명예회장이 지난 24일 오전 8시25분 교토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30일 발표했다. 이나모리 회장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교세라는 별도 추도식을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1932년 가고시마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가고시마대 공학부를 졸업한 뒤 교토 소재 쇼후공업이란 작은 회사에 취업했다. 4년 뒤 27살의 나이에 창업의 꿈을 품고 사표를 냈다. 1959년 4월 자본금 300만엔(약 3000만원), 종업원 28명으로 시작한 회사가 교토세라믹, 지금의 교세라다. 교세라는 종업원 8만여명, 지난해 매출 1조8400억엔(약 17조9000억원) 규모의 세계적인 전자 소재·부품·장비 회사로 성장했다.
이나모리 회장은 '아메바 경영'의 창시자로 유명하다. 조직을 '아메바'로 부르는 10명 이하 소집단으로 나누면 모든 구성원이 주역이 돼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아메바 경영 방식은 교세라를 시작으로 일본 700여개 기업에 도입됐다.
좌우명이 '경천애인(敬天愛人)'인 그는 강연에서 '이타(利他)의 마음'을 강조했다. 다소 희생이 따르더라도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하며, 사업에서도 장기적으로 보답을 받는다고 믿었다.
그는 다른 회사의 구원투수로 등판하기도 했다. 1998년 파산 직전의 복사기 회사가 도움을 청하자 경영을 맡아 회생시켰다. 2010년에는 일본항공(JAL)이 방만 경영과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전후 최대 적자를 내며 파산하자 당시 민주당 정권의 요청을 받고 78세의 나이에 무보수로 회장직을 맡았다.
그는 적자 노선을 중심으로 국제선 40%, 국내선 30%를 줄이고 4만8000명이던 인력을 3만2000명으로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불과 2년 8개월 뒤 JAL은 도쿄 증시에 재상장하며 회생했고, 그에게 '경영의 신'이란 칭호가 붙었다.
이나모리 회장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한국 농업의 싹을 틔운 원예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의 사위(넷째 딸의 남편)다. 우 박사 사망 이후 경기도 수원에 있는 장인의 묘를 자주 찾았다. 자신의 경영철학을 전하기 위해 세운 세이와주쿠(盛和塾)를 2016년 한국에도 설립했다.
이나모리 회장의 경영비법과 철학을 담은 저서는 <아메바 경영> 등 40여권에 이른다. 1989년 첫 발간을 시작으로 한국에도 1995년 <성공으로의 정열>로 번역돼 나와 인기를 끌었다. 교세라가 메인 스폰서였던 J리그 교토 퍼플상가에서 활약한 박지성 선수를 아꼈던 일화도 널리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