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반 쯤 시외버스터미날에 도착, 9시 따퉁행 차표를 사고 바로 버스에 올랐으나 제법 많은 사람이 앉아 있다. 먼저 타는 사람이 원하는 자리에 앉기 때문에 좀 일찍 차로 올라왔는데도 중간좌석만이 남아있다.
정시에 차는 출발하고 짧은 시간이 흐른 후 시가지를 벗어나자 바로 평지와 구릉으로 이어진 초원이 나타난다. 말이 초원이지 풀잎이 만들어내는 녹색보다 고동색 톤의 흙빛이 더욱 두드러진다. 우란차푸시를 넘게 되면 바로 산서성의 따퉁시이다. 우란차푸와 따퉁이 서로 경계를 맞대고 있으며 동시에 내몽골자치구와 산서성의 경계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중국의 행정구역으로서 도시의 개념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 우리의 도시개념은 넓은 국토에서 하나의 점으로 인식된다면 중국의 도시는 우리의 군이나 도에 해당되는 아주 광역의 개념이다. 우란차푸시의 면적도 남한땅의 절반을 넘는 54,500평방km정도의 면적이다. 내몽골 최북단의 도시로 러시아와 중국 흑룡강성과 접경하는 후룬베이얼시는 면적이 남북한 면적보다 큰 넓이로, 면적기준으로 중국에서 가장 큰 시이기도 하다. 이런 광역의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 기차표나 버스표를 구입할 때 광역의 도시를 말하면 발권 후 지명이 달라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바로 어얼두스는 동셩으로, 우란차푸는 지닝으로 표시되었지만 모든 도시가 또 그런 것은 아니었다. 빠오토우나 후허하오트 등은 광역 도시지명을 그대로 사용한다. 2시간 반이 지나 버스는 따퉁 고성벽 인근의 터미널에 닿았다. 터미널에 닿기 직전 차창을 통해 본 2층의 호텔로 이동해 수속하다. 방이 지저분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소박하다. 작은 책상이 하나 놓여있고 옷장은 없고 벽에 고리만 5개 부착되어 있다. 옷이나 다른 물건을 걸어두라는 것 같다. 하루 숙박비는 140위안으로 저렴하다. 짐을 정리하고 식사하러 나가다. 호텔 옆 편의점에서 6위안을 주고 따퉁지도를 사고 대로변의 이면도로로 발길을 옮기다. 주변에 아파트단지가 있고 거리엔 식당들이 즐비해있다.
한 사천식당에 가서 쇠고기볶음, 생강과 간장에 졸인 오리알과 밥 그리고 설화브랜드의 맥주 한병으로 점심식사를 하다. 이 술의 알콜도수는 2.5%로 서울에서 마시는 라이트맥주의 알콜도수보다 낮다. 식사 후 중심거리인‘신천지’상가 방향으로 걸었다. 기온이 아주 높지는 않았으나 가로수가 없어 땡볕이 그대로 몸으로 내리쬔다.
따퉁은 유명한 중국의 역사 고도이며 산서성과 내몽골 그리고 하북성이 서로 만나는 곳으로 북방을 향한 창구이자 대문이며 황토고원의 동북 끝자락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이런 지리적 요소 때문에 예로부터 이 지역을 쟁탈하기 위한 다툼이 치열했던 곳으로 “북방의 열쇠”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따퉁은 북위시절 수도였고 요와 금왕조 시절에는 제2의 수도였다. 중국 9대 古都라고도 부른다. 따라서 이 지역에는 고적과 역사적 유물이 산재해 있는 대표적 관광지이기도 하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따퉁은 유명한데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석탄산지로 ‘중국 석탄수도’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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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완전하진 않지만 도심의 따퉁 고성벽이 거의 복원이 이뤄졌다. 성내에는 역사가 오랜 절과 도교사원 그리고 전통신앙의 사묘, 이슬람사원인 청진사 등이 포진하고 있다. 우선 고성벽 내의 청진사로 향했다. 현재 청진사가 자리잡고 있는 곳에 원래는 당대 정관시절 이슬람사원이 들어섰던 자리라고 설명되어 있다. 지금의 청진사는 수년전 거의 새롭게 신축에 가까운 건축을 했다고 이 사원의 이맘 ( 청진사 즉 모스크의 이슬람교 지도자를 이렇게 부른다. 아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이 설명해주었다. 중국 內地풍 ( 이 말은 위구르풍의 이슬람문화에 대응한 개념으로 사용 )의 청진사는 기본적으로 회색벽돌로 건물 구조를 올리고 여기에 푸른색과 녹색이 뒤섞인 색조의 푸르스름하면서 아주 선명한 색으로 화초나 기하학적인 문양의 도안이 그려져 있어 두가지 빛깔이 아주 잘 조화를 이뤘다. 코란의 주요 귀절도 아랍어로 쓰여져 있는데 까막눈인 필자로서는 뜻은 모르지만 하나의 도안으로, 디자인으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외관은 기본적으로 중국적 건축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지붕에는 이슬람 특유의 장식이나 문양을 사용하여 순수한 아랍지역이나 중앙아시아의 이슬람사원보다 문화융합이라는 측면에서 더 눈길을 끌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고성 내 옛거리를 돌아다니니 중심지역에 자리잡고 또 가장 웅장한 고대 유적은 바로 화옌쓰(華嚴寺) 다. 이곳은 지난번 따퉁에 왔을 때 사찰 내부를 참관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겉에서만 절을 둘러보고 이곳에서 유일하게 티벳불탑을 모신 법화사로 발길을 돌렸다. 화엄사에서 좀 떨어진 법화사는 입장료는 40위안이었다. 티벳불탑내에 법화경이 봉안되어 있어 사원의 이름이 이로부터 연원하였다고 한다. 절을 들어서서 제일 뒤쪽 전각 바로 앞에 티벳불탑이 세워져 있으나 나머지 불당이나 전각들은 모두 중국풍의 사찰이다. 마지막 불전인 장경각에서 여행객에게 절에 대해 설명해주는 한 보살은 이 탑은 사리탑이 아니고 경탑이라고 말해준다. 이 탑이 따퉁 시내에서는 유일한 티벳불탑이라고 덧붙인다. 장경각 안에는 큰 유리창 밑에 깨알같은 글씨로 쓴 아주 큰 종이가 보관되어 있다. 보살의 설명으로는 한 장에 법화경 전문을 정성들여 필사한 것이라고 한다. 불탑은 크게 분류해서 고승대덕의 사리를 봉안한 사리탑과 불타의 말씀을 기록한 불경을 봉안한 경탑으로 분류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 양자가 함께 봉안된 경우도 있다.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밖으로 나와 호텔부근의 먹자골목의 한 식당에서 메밀볶음면과 산약, 목이버섯을 함께 볶은 것, 그리고 수란(계란찜)을 주문하여 먹었다. 음식값은 39위안으로 싼 편이었고 맛은 좋았으나 짠 게 흠이었다.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복숭아 4알과 토마토 4알을 8.5위안에 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