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2:20 (금)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4) 대공황 '모던 타임스'⑪ 기업과 노동의 '이중주'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4) 대공황 '모던 타임스'⑪ 기업과 노동의 '이중주'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1.12.3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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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자동차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 열어…인간과 기계가 한 몸으로 생산성 극대화
기술혁신의 부작용 간과 … 과잉생산이 과잉소비로 연결되려면 노동자는 빚을 내야
기업 이윤과 노동 임금을 '동시에 극대화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 여전히 풀리지 않아

자본주의는 기업의 이윤추구를 보장한다. 기업은 합법적으로, 때로는 상당한 보호를 받으며 이윤 추구 활동을 할 수 있다. 싸게 만들어 비싸게, 그리고 많이 팔라!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말은 참 쉽다. 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장애물이 있다. 노동자는 적게 일하고 많이 달라 하니 원가가 올라가고 경쟁기업 때문에 값 올리기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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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경쟁기업. 특정 기업의 이윤 추구를 막는 두 가지 장애 요인이다. 이윤을 극대화하려면 상품을 싸게 만들어야 하는데 노동자는 늘 더 많은 임금을 원한다. 노조 중심의 세력화로 다루기도 쉽지 않다. 때로는 태업에 파업까지 한다. 회사측은 어쩔 수 없이 임금을 더 올려줘야 한다. 경쟁기업도 장애물이기는 마찬가지다. 열심히 신기술을 개발해 상품을 만들었더니 경쟁 기업이 더 좋은 제품을 내놓으면 망하는 거다. 엇비슷한 제품을 1만원에 팔려고 했는데 경쟁기업이 9000원에 판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값을 9000원으로 내려야 한다. 매출도 줄고 이윤도 준다.

자, 기업은 여전히 이윤을 높이려 한다. 그래야 돈을 댄 투자자들에게 많은 몫이 돌아간다. 더 많은 이윤을 바라는 기업은 노동자와 경쟁기업이라는 장애물을 어떻게 넘어야 할까?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

20세기 초 광산에서 주로 쓰이던 컨베이어 벨트
20세기 초 광산에서 주로 쓰이던 컨베이어 벨트

노동 부문에서 출발해 이야기를 풀어보자. 노동자. 우선 그 수를 줄여야 한다. 사람이 많으면 인건비 부담이 커진다. 힘도 세진다. 기업이 어떻게든 사람을 줄이려는 이유다. 이것은 생산성, 즉 효율성과 관련돼 있다. 10명이 할 일을 9명이, 9명이 할 일을 8명이 해 나가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질문에 대한 최초의 답은 프레드릭 W. 테일러(Frederick W. Taylor)가 냈다. 경영자, 기계공학자, 산업공학자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는 그다. 공학과 경영학을 접목시켰음을 추정하기는 어렵지 않다. 1893년 그는 논문 "벨트에 대한 노트(Notes on Belting)"에서 비용과 벨트 움직임에 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동력 전달에 사용되는 벨트 시스템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다양한 연구와 여러 편의 논문을 쓴 그가 집대성한 책이 『과학적 관리법』이다. '과학 경영의 효시'로 여겨지는 이 책은 110년 전인 1911년 그가 나이 쉰다섯에 썼다. 이 책 제1장 첫 머리에서 그의 연구 취지가 나온다. "과학적 관리법은 고용주와 노동자 모두가 '최대 번영'을 이루는 데 기본 목적을 둔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고용주의 '최대 번영'은 '큰 이익', 노동자의 '최대 번영'은 '높은 임금'과 '능력 발휘'였다. 그는 특히 '근무태만'을 중시한다. '적당히 일을 처리하려는 근무 행위'인 '태만'은 그가 보기에 "노동자들이 저지르는 가장 사악한 행위"였다.

■ 기계와 인간 하나 된 포드시스템, 생산성 5배 향상

그는 이 '사악한 행위'를 막아야 했다. 그래야 노사 모두 '최대 번영'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이를 위해 그는 네 가지 핵심 요소를 제시한다. ➀작업에 적용할 과학의 개발, ➁과학적 원칙에 입각한 노동자의 선발과 교육ㆍ훈련, ➂노동자에 대한 경영자들의 협력, ➃노사 간 일과 책임의 균등 배분 등이었다. 중요한 것은 네 번째였다. 이 요인 안에는 '노사 간 일의 차이'가 내재돼 있었다. 경영자, 즉 사측은 과학적 원칙을 바탕으로 업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고 노동자는 이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또한 '경영자의 감독ㆍ관리ㆍ지시 업무'와 '노동자의 이행 업무' 개념이 포함돼 있다.

이 같은 '테일러 시스템'을 자동차산업으로 계승ㆍ발전시킨 것은 헨리 포드(Henry Ford)였다. 당시 컨베이어 벨트는 주로 광산에서 사용됐던 것이다. 하지만 포드는 과학적 연구를 통해 이를 자동차 생산과 연결시켰다. 1903년 회사를 설립한 그는 이후 컨베이어 벨트를 적용한 새로운 생산방식을 도입, 생산성을 혁명적으로 높였다. 한 명의 숙련공이 하나의 핸들 조립에 드는 시간 25분을 5분으로 단축시켰다. 생산성이 무려 5배나 높아졌던 것이다. 이로써 포드는 다른 경쟁사를 압도할 수 있었다. 값도 싸졌다. 1910년대 말 1950달러였던 'T형 포드(Model T Ford)'는 1920년 대 후반 290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로써 포드는 인류에게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였다. 또한 이탈리아 공산당 창시자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는 이 방식에 '포디즘(Fordis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이 이름은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된다. 전문가들은 포디즘의 핵심은 '결합노동(Combined Labor)'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노동이 기계와 하나가 됐다는 얘기다. 한 마디로 '인간의 기계화'다. 생각해 보라. 10초마다 똑같은 행동을 해야 한다. 숙련, 비숙련 노동자를 가리지 않는다. 돈다. 노동자가 정신병에 걸리거나 회사를 그만두는 게 이해가 된다. 생산성을 높이니 노동력 이탈의 문제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도 간단히 해결됐다. 임금을 대폭 올려버린 것이다. 시간 당 2~3달러였던 임금을 5달러로 올렸다. 시간이 가면서 임금을 더 올렸다. 1919년에는 6달러로, 1929년에는 9달러가 됐다.

최초로 시민권을 받은 인공지능(AI) 로봇 소피아. 기업의 공장ㆍ사무혁신은 최근 AI의 출현으로까지 이어졌다.
최초로 시민권을 받은 인공지능(AI) 로봇 소피아. 기업의 공장ㆍ사무혁신은 최근 AI의 출현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같은 기술혁신은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여는 듯 보였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이어주는 핵심 연결고리, 즉 고임금 노동자가 탄생했던 것이다. 이들 고임금 노동자들에게는 '중산층'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대량생산되는 제품의 대량소비자로서 자본주의 체제를 이끌어가는 중추가 됐던 것이다. 그럼, 이것으로 끝나는 것일까? 중산층이 이끌어 가는 자본주의는 지상천국? 해피 엔딩? 모두가 알다시피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이후 자본주의 체제는, 논리적으로, 어떤 변화를 겪을 것인가?

앞서 말한 대로 기업의 이윤추구는 끝이 없다. 이 얘기인즉 생산과 사무의 기계화ㆍ자동화는 끝이 없다는 것이다. 1990년대 컴퓨터의 도입과 함께 마이클 해머(Michael Hammer)의 '리엔지니어링' 열풍을 생각해 보라. 이 무렵 생산직 노동자의 대대적인 감축이 일어났다. 사회학자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노동은 끝났다"며 저서 『노동의 종말』을 쓴 게 1995년의 일이다. 이 작업은 지금도 계속된다. 2020년대에는 AI가 전문직 일자리까지 노린다. AI가 소설도 쓰고 기사도 쓴다. 작곡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 판례는 세상 모든 판사를 합친 것보다 많이 안다. 수술 할 때 손 떨림도 없다. 판사도 의사도 상당 수 사라진다.

이윤을 키우려는 기업의 기계화ㆍ자동화는 이처럼 대대적인 기술 혁신을 불러온다. 그러나 기술혁신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기술혁신이 불러 오는 여러 문제들. 일단 생산 측면을 보자. 이 대목에서 다시 '경쟁기업'이 등장한다. A기업의 사례다. 생산성은 자꾸 높아진다. 10명이 하나 만들던 것을 3개, 5개, 10개를 만든다. 생산량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단가가 적게 들어 값을 조금 낮춰도 괜찮다. B기업은 어떨까? 마찬가지다. C기업은? D가업은? 모두 같다. 결론. 사회 전체적으로 생산량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과잉생산'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얘기하는 '생산의 무정부성'이다.

소비 측면은 어떨까? 과잉생산의 짝은 과잉소비다. '대량생산-대량소비'라는 표현은 점잖다. 실은 과잉생산이다. 그리고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는 소비자의, '과소소비'가 아닌, '과잉소비'를 유발시킨다. 멀쩡한 핸드폰을 바꿔야 하고 멀쩡한 옷을 버려야 한다. 소비자 대다수는 노동자다. 그렇다면 그들 '소비자=노동자'는 어디서 돈이 나와 과잉소비를 할까? 급여? 아니다. 임금을 올리면 기업의 이윤이 줄어든다. 답은? '빚'이다. 사회는 노동자에게 "빚을 내 소비하라"고 부추긴다. 결국 노동자는 빚더미를 짊어질 수밖에 없다. 종이 위에 집을 짓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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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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