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5월 1일을 기해 1989년 시작된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30년 만에 끝내고 새로운 연호인 레이와(令和) 시대를 맞는다. 일본 사회 곳곳에서 새 연호 관련 행사가 펼쳐지고, 퇴위하는 일왕과 곧 즉위할 왕세자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방송 전파를 타고 있다. 새 일왕의 즉위로 임시공휴일이 지정되면서 사상 최장인 10일 연휴가 시작됐다.

일본 정부·여당의 정치인들은 분위기를 띄우면서 이에 편승해 더 강한 일본을 만들기 위한 헌법 개정을 꾀하고 있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지난 1일 연호 발표 이후 5%포인트 정도 올랐다. 특히 아베 총리는 반복해서 연호 교체와 새 일왕의 즉위, 개헌을 하나의 논리로 연결 지으려고 시도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 규정인 헌법 9조에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개헌안을 2020년 시행 목표로 통과시킨 뒤 전력과 교전권 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평화헌법)를 다시 고치는 '2단계 개헌'을 통해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변신시키려는 야욕을 갖고 있다. 그는 지난 23일 개헌 추진 단체의 집회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레이와라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선에 섰다. 이 나라의 미래상을 정면으로 논의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 헌법은 국가의 이상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아베 정권이 새 시대를 맞아 더 강한 일본을 만들려고 한다는 의심은 아베 총리가 직접 낙점했다는 새 연호 '레이와'와 관련해서도 나온다. 일본 정부는 '레이와'의 의미를 '아름다운 조화'라고 강조하지만, '레이(令)'가 명령을 뜻하는 한자어이며 '와(和)'는 태평양전쟁이 일어났던 '쇼와(昭和·1926∼1989)' 시대의 '와'와 겹친다는 점에서 고압적으로 느껴져 불편하다는 의견은 일본 내에서 많다.
일본은 아베 정권에서 군사대국화를 꿈꾸며 매년 방위비를 늘리고 있다. 방위비는 7년 연속 증가하며 올해년도 방위비는 사상 최고액인 5조2574억엔(약 54조6200억원)으로 편성됐다.
아베 정권은 연호 변경을 계기로 과거 헤이세이 시대와 작별을 고하며 일본을 '리셋'하려 들지만, 새로움을 논하기에는 청산하지 못한 과거 유산과 내정의 숙제가 많다.
강한 일본을 꿈꾸며 우경화하는 사이 한국 등 주변국과의 역사 문제는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및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한국에 공세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최근 내놓은 외교청서에서 '(위안부) 문제는 해결이 끝났다'는 입장을 반복했고, 한국 강제징용 소송의 원고가 "징용된 분은 아니다"는 정권의 입장을 반영했다.
내정에 있어서도 과제가 적지 않다. 마이니치신문의 지난해 12월 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들은 헤이세이 시대 최대 사건으로 동일본대지진(2011년 3월)을 꼽았다. 5만2000여명의 이재민들이 여전히 가설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베 정권은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제1원전 수소폭발 사고의 교훈을 잊은 채 원전 재가동 정책을 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