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먼쓰(法門寺)로 가는 날이다. 호텔에서 도보로 10분이면 시외버스터미날이고 그곳에서 파먼쓰로 가는 버스를 탄다. 차비는 24.5위안으로 7시 45분 출발이다. 한중에서 빠오지로 올 때는 거대한 친링산맥을 넘느라 산골짜기 길을 굽이굽이 돌았으나 오늘 여정은 관중 평원을 달리는 것으로 시종 평탄한 길이었다. 이 일대는 관중 평원지대로 섬서성 일대에서는 가장 풍요로운 지역이고 농업생산성이 가장 높다.

오늘 타게 된 버스는 중형버스로 출입구의 1인석 좌석에 앉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전면 차창을 통해 바깥 풍광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2시간 20여분이 지난 후 멀리서 손을 합장한 모양의 거대한 구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달리 표현하면 사각형의 거대한 다이아몬드의 모습 비슷하기도 하다. 바로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본 파먼쓰의 새로운 구조물, 즉 불타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지은 거대한 구조물, 현대식 사찰이다. 자료에 의하면 이 구조물의 높이는 148m이다. 어지간한 야산보다 높은 것 아닌가? 이 구조물이 시야에 들어온 후에도 한참을 더 달려 파먼쓰 입구에 닿았다. 이 사찰은 당왕조의 황실 사원으로 황실 불국을 상징하는 곳이었고 일반인에게 호소력이 컸던 것은 중국 전역에 걸쳐 19곳에 불과한 불타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절 가운데 하나라는 점 때문이었다. 지난 세기 전란과 자연재해 등으로 많이 파손된 이곳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국보급 보물이 쏟아져 나왔고 이들을 전시하기 위해 옛 절 유적지에 파먼쓰 박물관을 지었다.

중국의 박물관 계통은 크게 봐서 행정단위별로 건립하는 박물관과 대량의 유물이 출토되거나 중요한 유물이 출토될 경우에는 경우엔 현장에 박물관을 건설하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전자는 가령 섬서성역사박물관처럼 성 단위로 성도에 건설되는 박물관이 예가 될 것이고, 후자의 예로는 바로 이곳 파먼쓰박물관이나 시안의 진시황병마용 출토현장에 세워진 병마용박물관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좋은 유물관리방식이자 교육의 장으로 생각된다. 시안의 대표적 신석기 유적지인 반파박물관도 바로 발굴현장에 지어졌다. 파먼쓰 박물관에는 각종 장식물과 도자기류 그리고 금제의 그릇류 등 다양하면서도 진귀한 보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불타의 진신사리는 파먼쓰박물관이 아닌 앞서 언급한 새로 건축한 거대 사원에 모셔져 있다.

원래 파먼쓰에서는 불타의 진신사리 즉 불지사리를 모신 곳은 지상의 절 건물이 아닌 절 지하에 약 10여평에 이르는 석실을 조성하여 8중의 보물함 속에 존봉한 것을 발굴과정에 발견하였다. 진신사리를 모신 이 8중의 보물함 자체가 대단한 공예와 정교한 장인의 솜씨가 발휘된 예술성이 아주 높은 보물이었다. 이곳에서 불타의 진신사리가 발견되고 절 지하에서 국보급 보물이 쏟아지면서 빠오지시의 시골이었던 이곳 파먼(法門)진은 하루 아침에 세계적 관심의 표적이 되었고 중국정부는 이를 기회로 삼아 이 절을 중국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개발하게 되었다. 지상에 건축된 파먼쓰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면 다음으로 20세기의 세계적인 발굴로 유명해진 파먼쓰 地宮을 참관하게 된다.

그러나 지하 석실로 내려갈 수는 없고 다만 다만 지궁의 지상출입구, 즉 대략 가로 세로 50-60cm됨직한 철망이 둘러쳐진 입구에서 안을 들여다 보는 것으로 대신하게 된다. 석실구조가 아주 견고하고 건축학적으로 안정감과 미학적으로 균형미를 갖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법문사의 지궁은 지금까지 발견된 중국의 탑신 아래 지어진 지궁 가운데 가장 큰 것이라고 한다. 불타의 指骨사리와 銅부도, 8중 보물함, 은화쌍륜, 12환 석장 등 불교 최고 보물의 출토에 이어 2천여 점의 당나라 문물이 쏟아져 나와 발굴 당시 세계를 경악시켰으며 중국 고고학계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세계의 사원 가운데 이렇게 많은 유물을 가진 곳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파먼쓰는 절의 이름에서도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이 절이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동한 말기인 환령 연간으로 이미 약 1,7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고, 周魏이전 시기 阿育王寺로 불렸고, 당고조 때 파먼쓰로 개명됐다. 이 절은 수당왕조 시절 황실사원이란 명예를 갖고 있었다. 신심이 깊었던 당시 왕실은 이곳과 깊은 연관을 맺었고 자연스럽게 이곳은 중국에서 하나의 불교성지가 되었다. 이 절의 이름이 중국의 왕이나 황제도 아닌 인도의 아육왕의 이름을 본따 아육왕사로 불린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불교전설에 의하면, 기원전 3세기 인도의 아육왕이 인도를 통일한 후 불법을 만방에 널리 전파하기 위해 불타의 사리를 8만4천분으로 나눠 전세계에 절을 짓도록 하면서 중국에는 모두 19곳 절에 불타의 진신사리를 모시게 됐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초기에 아육왕사로 명명되었다는 것이다. 2004년 유네스코는 이곳 파먼쓰를 세계 9대 기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당대에는 8명의 황제가 사리를 황궁에서 친견하거나 아니면 이곳 파먼쓰에서 공양했는데 그 행사가 엄청나게 거창하고 화려했음을 이 절 박물관의 벽화가 잘 보여주었다. 불지골을 파먼쓰에서 장안으로 옮겨오는 과정은 화려함의 극치로 연도에는 중요 조정대신과 호위군대 그리고 연도의 수많은 백성들로 가득차고 이 과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화려함과 웅장함 그리고 벅찬 감동이 함께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파먼쓰의 영광은 당송시기에 극성에 달하고 이후 명청대는 다소 위축되었다.

불사리를 모시기 위한 높이 148m의 새로운 사찰 앞에는 폭이 108m에 이르고 길이가 1230m나 되는 불광(佛光)대도가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는 10만명의 불자가 한꺼번에 불공을 드릴 수 있는 거대한 광장도 조성되어 있다. 불제자가 아닌 필자로서도 새로 조성한 사찰과 불광대도 그리고 거대한 광장에서는 중국적 스케일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불광대도 양켠에는 거대한 보살상들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구조물이 이전의 석조와 목조 구조물과는 달리 주로 시멘트와 콘크리트 구조물이라 생각하니 왠지 씁슬한 느낌도 들었다. 거의 5시간에 걸친 절 참관을 마치고 사원 바깥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버스로 빠오지로 되돌아왔다. 오후 4시쯤 파먼쓰를 떠나 6시반쯤 빠오지시 인민공원 부근에서 하차하였다. 도로 양쪽이 모두 공원 지역이었고 한쪽에 ‘천하 제1등’이라는 거대한 등불 구조물이 보인다. 거대한 연꽃줄기 위에 연꽃이 피었고 연꽃모양 위에 등이 설치되어 있다. 길 건너 공원지역에서 눈길을 끈 것은 4차선 길거리를 중국의 전통 궁중악기인 편종을 길거리 장식으로 설치해 둔 것이었다. 도로에 횡렬로 편종을 매달아 하나의 멋진 거리 예술을 만들어냈다. 아주 재미있는 길거리 예술작품으로 여겨졌다.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조명이 들어온 인민공원에는 중년부인들의 체육활동이 시작되고 또 길거리의‘명필’들이 서서 큰 붓으로 길바닥을 화선지삼아 글을 쓰고 있다. 해서 행서 초서 모두 전문가들인 것 같다. 이 서예활동이 좋은 점은 큰 붓에 물을 묻혀 글자를 써 나가면 약 1분 정도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이 시간이 지나면 물이 완전히 말라 다시 길바닥은‘백지’가 된다는 점이다. 불도 수련의 한 방식인 만다라와 유사한 점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오늘 파먼쓰 한 곳을 주로 참관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주 속이 꽉찬, 충실한 여행을 한 기분이 들어 몸은 무거웠지만 기분은 아주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