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8 01:20 (화)
중국구석구석탐색⑦실크로드와 장건
중국구석구석탐색⑦실크로드와 장건
  • 홍원선 이코노텔링 대기자(중국사회과학원박사ㆍ중국민족학)
  • wshong2003@hotmail.com
  • 승인 2019.04.02 0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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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존재 첫 인식한 장건, 두 차례 서역 원정 … 동서 경제 문화교류 물꼬 열어

양센에서 청구(城固)로 이동해 장건의 묘를 찾아갔다. 장건은 기원전 2세기 실크로드를 처음 개척한 한왕조의 걸출한 외교가이면서 지리학자로 볼 수도 있다. 이런 그의 세계사적인 공헌, 중국과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등 3국이 연합하여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한 실크로드 그리고 장안과 천산 등이 실크로드의 한 부분으로 모두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장건기념관의 입구
장건기념관의 입구

중국만 국한한다면 장건의 묘와 함께 섬서성의 다른 6곳 실크로드 관련 문화유산이 실크로드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장건은 동양사람으로 가장 먼저 서양의 존재를 인식하였고 그리고 지중해 일대까지 다녀온 지리학자이기도 하다. 그가 족적을 남긴 지역은 서역( 전통 중국인의 지리관념으로 서역은 지금 감숙성의 경내인 옥문관 서쪽 지역을 일컫는 것이란설이 통설이다. 소수의견으로는 감숙의 가욕관 서쪽을 가리킨다는 설도 있다 ) 각국과 중앙아시아지역으로 대원, 강거, 대월지와 대하제국과 오손( 발하쉬호수와 이리하유역 ) 엄채( 카스피해 이북지역 ), 안식 (페르시아 ) 신독 ( 천축 즉 인도)등의 지역이다. 그는 파미르고원의 동서와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및 페르시아와 인도 제국의 위치, 특산, 인구, 도시, 병력 등을 자세히 조정에 보고했고, 이들 보고내용은 사마천의 사기<대원열전>에 기록 보존되어 내려온다. 그는 13년 동안의 해외여행에서 오랜 시간을 흉노의 포로로 생활하였지만 이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결국 흉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귀국하고 한무제에게 진기한 해외경험을 상세히 복명하였다.

장건의 1차 서역원정 지도
장건의 1차 서역원정 지도

장건의 두차례 서역행이 중국과 서역의 경제문화교류를 촉진했으나 흉노의 사주를 받은 누란과 고사 등이 자주 실크로드에 출몰하여 외교사절을 공격하고 재물을 강탈하는 등의 사건을 일으켜 실크로드의 교통에 장애요인이 되었고 한조는 군사력을 동원하여 이들을 패퇴시켰다. 채륜도 장건도 모두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역사인물들로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이라 언젠가 한번 그 유적을 찾아보고 싶었는데 오늘 그 뜻을 이루게 돼 숙제를 마친 학생처럼 홀가분한 기분이 든다.다시 한중으로 돌아와 옛날 유방이 한신을 대장군으로 임명한 장소인 바이장타이(拜將台)를 둘러보기로 했다. 구한타이에서 바이장타이 등이 소재한 이곳 한중은 한왕조의 개창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곳이다.

배장탄. 한신을 대장군으로 임명하는 의식을 거행한 장소. 이 장소의 면적이 7,800여 평방미터로 그가 한 왕조에서 차지한 비중을 짐작할 수 있었다. 웬만한 왕의 즉위식도 이처럼 거창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배장탄. 한신을 대장군으로 임명하는 의식을 거행한 장소. 이 장소의 면적이 7,800여 평방미터로 그가 한 왕조에서 차지한 비중을 짐작할 수 있었다. 웬만한 왕의 즉위식도 이처럼 거창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바이장타이는 한중시 남문 바깥에 위치해 있고 유방의 왕궁터인 구한타이로부터 불과 200여m 떨어져 있다. 면적은 7840평방m이고 대(臺)의 높이는 3m를 넘는다.한신 대장군 임명식을 위해 세운 단 ( 혹은 대 )으로 단 아래에 동서 방향으로 하나씩 석비가 새겨져 있다. 동비에는 바이장탄(拜將壇) 세 글자가, 西碑에는 漢大將韓信拜將壇이란 8자가 각각 양각되었다. 최고 군지휘관을 임명하는 것이 한 왕조로서 중요했고 더구나 천하를 두고 초와 한이 겨루던 상황에서는 이보다 더 막중한 국사는 없었으리라. 대장군에 취임한 후 한신은 위, 조, 연, 제, 초를 차례차례 격파, 패퇴시키고 유방의 천하통일 대업에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중국고사에 한신과 관련된 성어가 많으나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아마도 다다익선일 것이다. 유방과 한신이 첫 대화를 나눌 때 유방이 한신에게 장군은 병력 얼마나 거느릴 수 있는가를 묻자 한신은 많을수록 좋다면서 多多益善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군 최고지휘관의 권위가 대단했음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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