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1 20:27 (화)
한국 경제사를 투영한 '135년 廣告파노라마'
한국 경제사를 투영한 '135년 廣告파노라마'
  • 장재열 이코노텔링 기자
  • kpb11@hanmail.net
  • 승인 2020.01.14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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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광고박물관)

1886년 책 모양의 한성주보에 글이 잔뜩한 독일계 세창양행의 광고가 효시
해방 전후로 국산상품 러시 이루며 광고 봇물… 부수놓고 신문간 경쟁 치열
신문ㆍ라디오ㆍ컬러TVㆍ인터넷 으로 미디어 진화 … 광고 TOP10 선진국
디지털미디어 광고 약진, 비중 절반육박 … 허위ㆍ과장광고 역기능은 숙제

광고는 우리나라 경제역사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광고史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산업화의 여정과 궤를 같이한다. 기업이 만든 상품의 발자취는 물론 기업가들의 국산화 열정이 담겨져 있다. 근대 50년의 일상 생활의 변천사도 엿볼수 있다. 그럼 상품 광고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우리나라에 근대적인 모습을 갖춘 광고가 등장한 것은 1876년 일본과 맺은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던 무렵이다.

열흘에 한번씩 발행했던 한성주보에 우리나라 근대광고가 실렸다. 1885년 2월26일자 신문이다. 온통 글 투성이던 독일계 회사인 세창양행의 광고(왼쪽)는 1930년대에 이르러선 수입상품의 사진을 넣는등 제법 광고형태를 갖췄고 신문들도 하단 5면에 광고를 배정하는 관행이 이뤄졌다.
열흘에 한번씩 발행했던 한성주보에 우리나라 근대광고가 실렸다. 1885년 2월26일자 신문이다. 온통 글 투성이던 독일계 회사인 세창양행의 광고(왼쪽)는 1930년대에 이르러선 수입상품의 사진을 넣는등 제법 광고형태를 갖췄고 신문들도 하단 5면에 광고를 배정하는 관행이 이뤄졌다.

 일본상인들을 통해 서구의 문물이 들어올 즈음 신문이 발행되었고 광고도 등장한다. 이렇다할 미디어가 없었던 시절이라 신문 광고가 처음일 수 밖에 없었다. 그 신문은 열흘에 한번 발행됐던 한성주보였다.

1886년2월26일자 한성주보 제4호는 독일계 회사인 세창양행의 광고를 실었다. 광고형태 역시 요즘광고와는 딴판이다. 글자로만 이뤄져 있고 신문은 노끈으로 페이지를 엮어진 것이어서 얼핏 보면 책처럼 보인다. 한성주보는 2년 전 갑신정변 직후 발행이 중단된 한성순보의 뒤를 이어 한성(서을시)의 박문국에서 발행한 일종의 관보(官報)였다. 내달이면 꼭 광고의 역사는 135년에 접어든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광고라는 용어가 정립되지 않을 당시어서 광고는 ‘고백’(告白)이란 제목을 달고 신문에 실렸다. 이 회사와 유사한 이름이 바로 민족기업으로 꼽히는 유한양행이다.

1930년대는 일제가 문화정책의 하나로 신문의 증면을 허용하면서 광고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당시 시보레 자동차의 광고가 눈에 띈다. 그때도 연비가 좋다는 내용을 광고 카피의 맨윗줄에 올렸다.
1930년대는 일제가 문화정책의 하나로 신문의 증면을 허용하면서 광고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당시 시보레 자동차의 광고가 눈에 띈다. 그때도 연비가 좋다는 내용을 광고 카피의 맨윗줄에 올렸다.
지금은 꿈도 못꾸는 담배광고도 있었다. 1914뇬 조선연초주식회사가 건물 신축을 기념해 담배광고를 했는데 광고모델로 여성의 커리커쳐를 그렸다.
지금은 꿈도 못꾸는 담배광고도 있었다. 1914년 조선연초주식회사가 건물 신축을 기념해 담배광고를 했는데 광고모델로 여성의 커리커쳐를 그렸다.

창업주 유일한은 미국유학직후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국내에 서양의약품을 수입해 판매했다. 유한양행은 1926년에 조선과 동아일보에 광고를 실었다. <관련기사 이코노텔링 2018년 12월10일자>

그러니까 ‘양행’(洋行)이라는 뜻은 서양제품을 판매한다는 뜻으로 회사이름에 차용된 것이다.  한성주보의 광고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광고시장은 급속히 커진다. 1900년대초 부터 신문은 뭉론 전차에도 광고가 붙었고 광고형태도 ▲포스터▲옥외▲미디어 광고로 발전했다. 일제 강점기(1910~1945)에서 서양문물이 많이 유입됐고 경성방직 등 국내 산업체도 일어나면서 신문의 하나엔 제법 국산 제품의 광고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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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년전 신문 하단에  3개의 기업 광고를 냈는데 지금도 판매되는 브랜드여서 살갑게 느껴진다.

 1930년에는 우리나라 신문들이 광고수요에 맞춰 8~12면으로 증면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일제에 의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폐간되면서 광고가 급속이 줄었고 일본의 패망 시기에는 거의 광고가 사라지는 암흑기를 겪는다.

삼성물산은 1957년 뉴욕타임즈에 광고를 내는 등 해외시장 개척에 앞장섰다.사진=삼성50년사.
삼성물산은 1957년 뉴욕타임즈에 광고를 내는 등 해외시장 개척에 앞장섰다.사진=삼성50년사.

.해방직후 다시 신문들이 늘어났고 1954년 민영 상업 라디오 방송인 CBS가 전파를 쏘면서 광고시장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1959년에는 우리나라 처음으로 진로를 광고하는 라디오 CM송이 전파를 탔다. 이후1980년까지는 광고시장이 급성장을 했다. 전문적인 광고회사가 자리를 굳힌 시기도 이 무렵이다.

광고박물관은 기획전의 하나로 2019년 공익광고 한마당이란 코너를 운영하고 있었다.
광고박물관은 기획전의 하나로 2019년 공익광고 한마당이란 코너를 운영하고 있었다.

제일기획, LG애드 등 대그룹들이 너도나도 계열 광고회사를 설립했다. 우리나라가 수출 100억달러(1977년)를 돌파하면서 국내기업의 해외광고가 늘어났고 이 즈음 국내 대기업들은 해외 광고업체들과 손잡고 해외시장 판촉용 광고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삼성물산은 이보다 앞서 1954년 뉴욕타임즈에 광고를 냈다.

 19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과정을 거치면서 광고시장이 위축되는 듯 했으나 그 때 컬러TV방송(1981년)가 등장하면서 광고기법이나 제작이 선진화됐고 광고는 88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비약적으로 성장을 거듭한다. 최근 광고시장은 미디어 환경에 변화에 따라 종이신문 광고가 쇠퇴하고 1995년부터 본격 도입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 뉴미디어 광고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1988년 공명선거와 관련한 커리커처 형태의 공익 광고. 그때도 성숙한 민주시민의 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과연 그럴까.
1988년 공명선거와 관련한 커리커처 형태의 공익 광고. 그때도 성숙한 민주시민의 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과연 그럴까.

2018년 전체 광고시장은 13조6천억원으로 이중 디지털광고의 비중은 45%이른다. 광고시장 규모가 세계 10위권으로 커졌다. 1991년 광고시장이 개방무렵부터 다국적 광고회사들이 국내진출이 늘었다. 이런 ‘한국광고 135년’을 기록하고 정리한 곳이 있다. 서울 2호선 잠실역 7번출구에서 곧바로 200미터쯤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어 조금만 가면 오른편에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운영하는 ‘한국광고박물관’이 나온다. 2008년에 문을 열어 올해로 12년됐다.

입구에 들어서자 눈에 띄는 광고가 있다. 1950년대 신문 하단의 5단광고에 나란히 실린 3개의 기업광고다. 모두 다 지금까지 경영을 하는 회사다. 럭키치약,백화양조,샘표간장이다. 이들은 물자가 부족하던 시기에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광고역사를 살펴볼수 있는 연대별 주요 자취중에는 1996년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ABC 인쇄매체 부수조사의 결과가 발표된다.

동영상 광고제작을 하는 인력과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코너가 있었다. 광고에 관심이 많은  어린이나 학생들이 눈여겨 보는 곳이라는게 박물관측의 설명이다.
동영상 광고제작을 하는 인력과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코너가 있었다. 광고에 관심이 많은 어린이나 학생들이 눈여겨 보는 곳이라는게 박물관측의 설명이다.

당시만 해도 기업광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주요신문(이른바 조중동)들이 부수 조사밥법으로 둘러싸고 이견을 보여 부수공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광고주 입장에선 어느 신문이 어느정도의 부수를 발행하고 실제로 독자 가정에 배달되는지를 알아야 했는데 사정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광고전략을 짜기 어려웠다.

그래서 신문사 마다 부수를 많이 찍는 기준으로 할 것이냐 아니면 가정독자 규모를 기준을 할 것이냐를 놓고 입씨름을 벌였다.. 부수 경쟁은 부작용도 많이 낳았다. 무리하게 부수 확장 판촉전략을 펴는 바람에 볼썽 사나운 일도 많이 생겼고 신문사마다의 출혈 경쟁이 격화됐다. 이는 신문사의 경영을 악화시키는 부메랑으로 작용했다.

2018년 우리나라 광고시장 규모는 13조6천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인터넷 등 디지털 광고의 비중에 45%에 이르러 머지 않아 절반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머지 않아 종이신문과 TV광고를 앞지를 것으로 점쳐진다/이코노텔링 그래픽팀.
2018년 우리나라 광고시장 규모는 13조6천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인터넷 등 디지털 광고의 비중에 45%에 이르러 머지 않아 절반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머지 않아 종이신문과 TV광고를 앞지를 것으로 점쳐진다/이코노텔링 그래픽팀.

황우석 교수의 논문 파문(2005년)으로 MBC TV에 광고를 했던 12개의 스폰서가 일시에 광고를 중단하는 초유의 일도 벌어졌다. 몇십년전에는 지금은 꿈도 못꾸는 담배광고가 버젓이 신문광고란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손승혜 한국광고박물관 안내데스크는 “한국 광고의 역사는 물론 광고제작 프로세스도 엿볼수 있는 체험공간이 많아 주말에는 학생과 어린이 등 단체 관람객이 많다”고 말했다.

☞광고의 효용 가치와 부정적인 면= 기업간 경쟁을 촉진해 더 좋은 제품을 만들도록 유도하는 광고는 자본주의 꽃이라 불릴 만큼 자유경제체제에서의 필수요소다. 마케팅 수단에는 4P(product.price, place, promotion)가 있는데 광고는 이 가운데 촉진(promotion)의 한 수단이다. 광고는 우선 제품에 대한 인지도를 높인다. 이로인해 대량판매는 대랭 생산을 가능하게 해준다. 결과적으로 기업간 완전경쟁을 유도할 뿐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의사결정을 하도록 도와준다. 어두운 측면도 있다. 특히 과대·과장·허위 광고는 소비자들에게는 독이다. 소비와 충동구매를 유발한다는 비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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