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이 고통 받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생태계 전체가 붕괴하고 있어요. 우린 대멸종의 시작점에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하는 이야기는 오로지 돈과 영구적인 경제성장에 관한 동화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죠?"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한 16살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세계 정상들 앞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무관심을 질타하며 "지금 당장 여기서 행동에 나서라"고 호소했다.
비행기 대신 태양광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뉴욕에 도착한 툰베리의 연설 시간은 약 4분. 떨리는 목소리로 마이크를 잡은 그는 "이건 대단히 잘못됐다. 나는 지금 단상 위가 아니라 바다 건너편에 있는 학교에 있어야 한다"며 "여러분들은 헛된 말로 내 꿈과 내 유년을 빼앗아버렸다"는 질책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툰베리는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지난 30년 동안 과학적으로 분명해졌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계속 외면할 수 있느냐"고 질타하는 대목에선 감정에 북받친 듯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는 이어 "여러분들은 우리말을 경청하고 있고 긴급함을 이해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못하겠다"며 "만약 진심으로 현재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건 여러분들이 사악하다는 의미"라고도 했다.
툰베리는 "앞으로 10년 내에 온실가스를 반으로 줄이자는 제안이 지금 인기를 얻고 있지만, 이는 지구 온도의 상승폭을 1.5도 밑으로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을 50%로 줄인다는 것에 불과하다"며 "우린 50%의 위험을 감수하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여러분들이 대기에 배출한 수척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없앨 임무를 우리와 우리 후세대에게 떠넘긴 것이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195개 협약 당사국은 2015년 12월 파리 기후변화협정을 채택하며 이번 세기말(210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하고, 1.5도 선을 넘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이날 기후행동 정상회의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 60여 세계 정상들과 지도자들이 참석해 툰베리의 연설을 지켜봤다. 툰베리가 연설을 시작할 때만 해도 16살 소녀의 당돌함 쯤으로 여긴 듯 장내에선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여러 번 접힌 종이 한 장에 담아온 메시지를 또박또박 읽어가자 이내 숙연해졌다. 툰베리의 연설이 끝나자 웃음기 사라진 정상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2017년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회의장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지만 툰베리의 연설을 듣지 않고 자리를 떴다. 행사장을 걸어가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입술을 다물고 싸늘한 눈빛을 보내는 툰베리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한편 툰베리는 각국 청소년 15명과 함께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데 충분한 행동을 취하지 않은 다섯 나라(독일과 프랑스, 브라질, 아르헨티나, 터키)를 유엔 사무총장에게 고발하는 문서를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