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끝이 아닌 시작'이며, '부재가 아닌 가능성' 상징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0'이라는 숫자는 약 1,500년 전 인도의 수학자들에 의해 공식적으로 체계화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의 수학자 피보나치가 13세기에 자신의 저서 '리베르 아바치(Liber Abaci)'를 통해 이 개념을 소개했고, 이는 아라비아 상인들과의 교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이를 '아라비아 숫자'라 불렀지요.
흥미로운 점은 '0'은 다른 숫자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1부터 9까지의 숫자는 특정 수량을 나타내지만, '0'은 '아무것도 없음'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상징합니다. 무(無)와 공(空)을 나타내는 이 가상의 기호는 역설적으로 수학과 과학의 혁명적 발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십진법, 대수학, 미적분학 등이 '0'의 발명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며, 이는 결국 컴퓨터 과학으로까지 이어져 오늘날의 디지털 혁명을 가능케 했지요.

현대의 이진법 컴퓨터 시스템은 0과 1만으로 모든 정보를 처리합니다. 스마트폰에서 우주선 제어 시스템까지, 모든 디지털 기술의 기반에는 '0'이라는 개념이 근본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처럼 '없음'을 표현하는 기호가 인류 문명의 가장 복잡한 기술적 성취를 가능하게 했다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0'은 자리를 채우는 숫자가 아니라, 자리를 만드는 숫자입니다. 10, 100, 1000으로의 점프는 '0'이 만드는 빈 공간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비즈니스에서의 10배, 100배 성장도 기존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비우고 제로베이스에서 재구성할 때 가능해집니다.
만약 현재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모든 것을 제로베이스(zero-base)로 돌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기존의 가정, 프로세스, 비즈니스 모델을 모두 내려놓고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겁니다. 'Back to the Basic'은 단순히 뒤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본질로 돌아가 새로운 통찰력과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역사상 혁신적인 기업들의 궤적을 살펴보면, 그들은 모두 기꺼이 '제로' 상태를 경험했습니다. 어느 시점에서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했던 거지요. 그리고 그 공백의 순간이 오히려 폭발적 성장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0' - 제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끝이 아닌 시작이며, 부재가 아닌 가능성입니다. 모든 위대한 혁신이 그러하듯, 빈 공간에서 새로운 세계가 창조됩니다. 제로는 지혜의 원천이자, 무한한 창조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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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김용태 마케팅연구소 대표)= 방송과 온라인 그리고 기업 현장에서 마케팅과 경영을 주제로 한 깊이 있는 강의와 컨설팅으로 이름을 알렸다. "김용태의 마케팅 이야기"(한국경제TV), "김용태의 컨버전스 특강" 칼럼연재(경영시사지 이코노미스트) 등이 있고 서울산업대와 남서울대에서 겸임교수를 했다. 특히 온라인 강의는 경영 분석 사례와 세계 경영 변화 흐름 등을 주로 다뤄 국내 경영계의 주목을 받았다. 주요 강의 내용을 보면 "루이비통 이야기 – 사치가 아니라 가치를 팔라", "마윈의 역설 – 알리바바의 물구나무 경영이야기", "4차산업혁명과 공유 경제의 미래", "손정의가 선택한 4차산업혁명의 미래", "블록체인과 4차산업혁명" 등이다. 저술 활동도 활발하다. "트로이의 목마를 불태워라", "마케팅은 마술이다", "부모여, 미래로 이동하라", "변화에서 길을 찾다", "마케팅 컨버전스", "웹3.0 메타버스", 메타버스에 서울대는 없다(이북), 메타버스와 세 개의 역린(이북) 등을 펴냈다. 서울대 인문대 졸업 후 서울대서 경영학 석사(마케팅 전공)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