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여인들,거리 오물을 피해 신었던 ' 초핀 '이 하이힐의 원조
루이14세의 구두 수천켤레…그 때 여성보다 남성이 더 하이힐 선호

『사물의 민낯』(김지룡·갈릴레오 SNC 지음, 애플북스)란 책이 있다. 콘텐츠 창작집단이 우리가 일상에서 흔이 접하는 물건들의 기원과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살폈는데,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이 중 여성들이 애용하는 '하이힐' 이야기가 있는데 상식을 깨뜨리는 대목이 여럿이다. 우선 하이힐은 근대의 발명품이 아니다.
'굽이 높은 구두'라는 의미로 한정하면 하이힐은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역사에 등장한다. 그리스의 대표적 비극 작가인 아이스킬로스는 자신의 극에 출연하는 배우를 돋보이게 하려 코르토르노스란 통굽 구두를 신겼다니 말이다.
이렇게 연예인(?)들이 신던 통굽 구두를 여성들이 애용하게 된 시초는 16세기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비롯되었다는데 그리 아름다운 사연은 아니다. 베네치아 여인들이 거리에 널브러진 오물들을 피하기 위해 신었던 초핀(Chopine)이 하이힐의 진정한 원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유럽 도시는 하수 처리시설을 갖추지 않아, 일반 가정에서는 각종 오물은 물론 심지어 인분까지 거리에 마구 버렸기에 이런 걸 묻히지 않고 걷기가 힘든 실정이었다. (그 화려했다는 베르사유 궁전에도 화장실이 없어 정원에서 실례를 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이런 실용적 이유에서 유행한 하이힐이 패션의 주요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때는 프랑스의 루이 14세, 루이 15세 시절이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태양왕'으로 불리던 루이 14세는 자신의 각선미에 푹 빠진 나르시스트이기도 해서 수천 켤레의 구두를 소장했다고 한다. 그 시절엔 여성보다 남성이 하이힐을 즐겨 신었는데, 이는 여성들의 경우 바닥에 끌릴 정도의 스커트를 입었기에 굳이 화려한 하이힐을 신을 이유가 없어서였다고.
루이 14세에 이어 하이힐 붐을 이끈 사람은 루이 15세의 애첩 퐁파두르 부인이었다. 파리 문화예술계의 후원자로도 이름을 떨친 퐁파두르 부인이 자신만의 굽 높은 구두를 만들어 신고 베르사유 궁전을 누비자 귀족들도 이를 따라 하기에 분주했고 퐁파두르 부인의 굽 높은 구두는 한때 '루이 힐'로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원래 미적 용도를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말고도 하이힐에 관한 다른 '오해'가 있단다. 바로 하이힐이 '단신보조용'이 아니라 '체형보정용'이라는 점이다. 하이힐을 신으면 신체의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기 때문에 균형을 잡으려면 상체를 젖혀야 한다. 다리가 긴 여성들은 골반 부분에서 몸이 젖혀져 자연스레 가슴을 내밀게 되는 덕분에 하이힐은 긴 다리와 큰 가슴을 조합해서 시너지 효과(?)를 내려는 패션 아이템이라는 이야기다. 반면 키가 작고 비만인 여성들은 배를 내밀어야 하는 부작용(?)이 생긴다나.
또 하나는 하이힐의 위험성이다. 하이힐을 신고 15분만 걸으면 발가락은 압력밥솥에서 밥이 끓을 때의 4배에 달하는 압력을 받는다고 한다. 결국 무지외반증 등 각종 '발병'의 위험이 커진다는 이야기.
예전보다 덜 눈에 띄게 된 데는 이런저런 이유가 있는 셈이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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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