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등 아시아에 영향 클 것"…미국 등 비축유 방출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최대 석유시설 두 곳이 14일(현지시간) 예멘 반군의 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아 가동이 중단되자 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 브렌트유 가격은 16일 개장과 동시에 19% 넘게 폭등했다.
16일 싱가포르거래소에서 브렌트유 선물은 개장과 함께 배럴당 11.73달러 급등한 71.95달러로 19% 넘게 치솟았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는 배럴당 12.35% 상승한 67.66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도 10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도 장 초반 배럴당 63.34달러로 전장보다 15% 이상 급등하며 거래를 시작했다.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전략비축유(SPR) 방출을 승인하는 등 긴급 대응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오후 트위터를 통해 "유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공격을 근거로 나는 전략비축유의 방출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전락비축유 보유량은 6억6천만배럴로 알려졌다.
앞서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가 소유한 최대 석유시설 두 곳이 드론 10대의 공격을 받아 사우디의 원유 생산 절반이 줄어들었다. 아람코 측은 이번 사태로 하루 570만배럴의 생산량을 줄였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로이터는 이 문제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사우디가 원래 석유 생산능력으로 복귀하려면 며칠이 아니라 몇 주가 걸릴 수 있다고 전했다.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장관은 14일 국영 SPA 통신을 통해 예멘 반군의 공격을 받은 아브카이크와 쿠라이스 시설 두 곳을 일시적으로 가동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날 공격 여파로 사우디 당국이 일부 시설의 가동을 잠정 중단하면서 국제 원유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압둘아지즈 장관은 일시 가동중단 조치로 하루 570만 배럴 규모의 원유 생산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사우디 하루 산유량의 절반이자 세계 산유량의 5%에 해당한다.
미국 경제전문 재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가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이라는 점에서 파급효과가 클 수 있다고 진단했다. WSJ은 생산시설 폐쇄로 하루 500만 배럴의 원유 생산이 감소할 것이라며 이로 인해 세계적인 유가 상승이나 또 다른 주요 산유국인 이란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아브카이크 단지는 사우디의 최대 석유 탈황·정제 시설이라는 점에서 그 여파가 클 것으로 보인다. 아브카이크 단지는 사우디 동부에 몰린 주요 유전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탈황·정제해 수출항이나 국내 정유시설로 보내는 곳으로 하루 처리량이 사우디 전체 산유량의 70%에 해당하는 700만 배럴에 이른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따르면 최근 사우디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980만 배럴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전문가인 시장조사업체 IHS의 로저 디완 부사장은 아브카이크 단지를 석유수급 체제에 있어 "심장과 같다"며 이번 화재는 "심장마비가 일어난 셈"이라고 비유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보도했다. 제이슨 보르도프 컬럼비아대 국제에너지정책센터장은 "아브카이크 단지는 세계 원유공급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설"이라며 "이 공격으로 유가가 뛸 것"이라고 전망했다.
석유산업 컨설팅업체 리포 오일 어소시어츠의 앤드루 리포 회장은 특히 한국, 일본, 중국, 인도, 대만 등이 하루에 사우디 원유를 400만배럴이나 소진한다는 점을 들어 사우디 석유시설 가동 중단이 길어지면 한국 등 아시아 국가가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받으리라 내다봤다.
래피던 에너지 그룹의 밥 맥널리 회장도 "아브카이크 피격으로 제재 완화 논의가 중단되고 보복과 긴장 고조 쪽으로 논의가 진행된다면 유가는 손쉽게 10달러 넘게 오를 수 있다고 본다"고 미국 CNBC 방송에 말했다.
WSJ은 미국·사우디와 그 숙적 이란 사이 갈등으로 국제유가의 척도가 되는 브렌트유 가격이 연말까지 배럴당 12% 상승한 60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을 소개했다. 경제전문 매체인 블룸버그는 "중동의 지정학이 복수심을 안고 돌아와 원유시장을 강타할 것이다. 모두 두려워하는 일이 벌어졌다"면서 피해가 커 시설 가동 중단이 길어지면 원유 수입국이 비축유에 손을 대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비관적 시각과 달리 사우디가 예방 차원에서 일부 시설을 닫은 것일 뿐 대부분 시설은 수일 내 다시 가동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아람코의 최고경영자(CEO) 아민 나세르 회장은 "생산 재개를 위한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며 약 48시간 후 진척 상황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람코는 생산 감소분을 비축유로 채울 방침이다.
아람코의 비축량이 몇 주간 고객사에 차질 없이 공급할 수 있을 정도라는 점에서 시장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사우디는 자국 내에도 수백만 배럴의 원유를 비축해두고 있으며 네덜란드 로테르담과 일본 오키나와, 이집트 시디 케리르 등 주요 거점지역에 저장시설을 갖고 있다.
국제사회도 시장의 동요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우디 정부와 공조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성명을 내고 "세계 원유시장은 현재로선 재고가 충분해 공급은 잘 이뤄질 것"이라며 "현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사우디 당국, 주요 산유국과 수입국과 연락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화재는 아람코가 상장을 추진 중인 가운데 발생했다. 아람코는 역대 최대 규모로 예상되는 기업공개를 위해 최근 주관사를 선정했다. 이르면 11월 중 상장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WSJ은 사우디가 생산량을 하루빨리 회복시키지 못한다면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어 기업공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