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 18:00 (화)
[특별기획] 'SK 70년' 최종건ㆍ최종현 語錄 유산 (30) "실패 말하지 말라" … 산유국 도전
[특별기획] 'SK 70년' 최종건ㆍ최종현 語錄 유산 (30) "실패 말하지 말라" … 산유국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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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6.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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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정유회사 만들기 위해 독자적인 원유 비축 능력 절감
실패 가능성 크고 투자회수도 오래 걸리지만 원유 개발 결심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

과거 대한민국의 한계를 논할 때 자주 등장했던 말이다. 특히 1970년대 두 번의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이른바 '산유국'은 우리에게 언제나 부럽고 설레는 단어였다.

최종현은 유공 인수 후 빠르게 정상 궤도에 올려놓으며 다른 이들이 예상치 못한 다음 행보를 이어나갔다 그의 목표는 유공을 메이저 정유 회사로 키우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독자적인 원유 비축 능력이 필요했으며, 결국 독자적으로 유전을 개발하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유전 개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성공 가능성이 5~10%일 정도로 실패 확률이 높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첨단 기술과 고도의 전문 지식도 뒤따라야 했고, 성공한다 해도 투자 비용이 수익으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주변에서 하나같이 극구 만류한 이유였다.

최종현 선대회장, 1984년 12월 석유 개발 사업을 보고받고. 자료=SK.
최종현 선대회장, 1984년 12월 석유 개발 사업을 보고받고. 자료=SK.

최종현은 5%의 가능성이라도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돈을 아끼고 안전한 길을 가는 것도 미덕이지만, 단순히 눈앞의 이익만을 좇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석유 개발을 국가 자본의 축적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여겼다.

석유 개발 사업 시작을 앞두고 최종현은 석유개발사업팀 전원을 집무실로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앞으로 10년간 매년 이 사업에 1,000만 달러씩을 지원하겠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진행한 첫 프로젝트는 안타깝게도 350만 달러의 손해를 보고 실패로 돌아갔다. 사업에 참여한 많은 이가 참담한 실패에 주눅 들었지만, 최종현은 오히려 "성공보다 실패할 확률이 높은 사업"이라며 "손해를 보더라도 해볼 것은 해야 한다."라는 말로 그들을 위로했다. 그의 격려는 직원들에게 강한 의지와 도전 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행운이 찾아왔다. 1984년 7월, 북예멘 마리브 유전에서 석유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추정 매장량은 10억 배럴에 달했다. 이 소식을 가장 기뻐한 사람은 단연 최종현이었다. 많은 이의 반대를 무릅쓰고 감행한 투자가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마리브 유전은 원유가 발견된 지 16개월 만인 1985년 11월 '상업성 있음'이 공식 발표되었고, 2년 후인 1987년 12월부터 하루 15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8년 1월 20일, 마침내 유공해운 소속의 Y위너호가 35만 배럴의 원유를 싣고 울산항에 입항했다. 산유국의 꿈이 이뤄진 것이다.

무자원 산유국에 도전, 해외 석유 개발 시작(1983년 4월). 1983년 4월 미국 코노코사와 공동으로 인도네시아 카리문 광구 석유 개발에 투자, 우리나라 자원 개발 1호 기업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사진=SK.

하지만 최종현은 이 결과가 뜻밖의 행운임을 잘 알았다. 그는 예외적인 행운의 기쁨에 취하는 대신 10년 후를 내다보고 준비에 들어갔다.

이후 석유 개발 사업은 혹독한 실패를 거듭한다. 특히 1989년 말에 미얀마에서 거액을 투자하며 착수한 초대형 프로젝트는 4년간 무려 5,600만 달러를 쏟아 부었지만, 결국 대규모 유전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시 5,600만 달러는 웬만한 기업 하나를 살 수 있는 어마어마한 거액이었다.

하지만 철수를 결정했을 때 이번에도 최종현은 낙담해 있는 관계자들을 위로하느라 바빴다. 아니 격려하며 더 큰 의지를 불태웠다. "우리는 장사꾼이 아니라 인더스트리얼리스트!"라는 말과 함께.

미얀마의 실패에도 최종현은 흔들림 없이 석유 개발 사업을 추진해나갔다. 그 결과 1994년에는 이집트 수에즈만 중북부 해상에 위치한 북 자파라나 광구에서 원유 생산에 돌입했다. 이후 1998년부터 참여한 베트남 15-1 광구 수투덴 유전에서는 2003년 4억 2,000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했다.

최종현은 석유와 가스뿐 아니라 다른 광물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1994년 호주 토가라 지역의 탄광에서 유연탄 7억 7,000만 톤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는 국내 기업의 해외 자원개발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처럼 SK의 석유 개발 사업은 최종현의 의지가 없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자원개발 사업에 대한 그의 의지와 추진력이 오늘의 SK이노베이션, 크게는 SK그룹의 자원개발 영역을 넓힌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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