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돌아보며 원사공장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 알고 있던 최종건 "포기할 수 없는 꿈"
최종현은 국내수요가 많고 제조 공정도 단순한 아세테이트 원사의 독점 생산 전략 내놔

최종건이 원사 공장 설립의 꿈을 꾸기 시작한 건 19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 침체로 원사 수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공장 조업마저도 휘청거리자, 최종건은 이 문제를 타개할 방법은 오직 자체 원사 공장을 확보하는 일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산수갑산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가 살길은 원사 공장을 세우는 것이다. 해마다 원사 구하는 것 자체도 그렇거니와 업자들 눈치 보는 것도 서러워서 어디 살겠냐?"

문제는 원사 공장을 세우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원사 공장이 직물 공장을 세우는 일은 흔했지만, 직물 공장이 원사 공장을 세운 예는 거의 유례가 없었다. 원사 공장은 대규모의 자본력과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했고, 직물 공장은 원사 공장의 한 분야에 불과했으니 비교도 되지 않았다.
일본을 돌아보며 원사 공장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 잘 알고 있던 그에게 그 꿈은 요원한 것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꿈이기도 했다.
최종건이 오래도록 간직한 원사 공장 건립의 꿈을 본격적으로 밝힌 것은 1964년 10월 박정희 대통령과의 만남에 이르러서였다. 최종건은 대통령이 '제1회 수원의 날' 행사에 참석한 뒤 공장에 방문할 것을 알고 브리핑을 준비하면서 최종현과 원사 공장 건립을 논의했다.

그는 당장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폴리에스터 원사 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싶었지만, 최종현의 생각은 달랐다. 최종현은 여전히 국내 수요가 많고 제조 공정도 단순한 아세테이트 원사 생산부터 시작해 기술을 축적한 후 폴리에스터 원사 공장을 지어도 늦지 않다는 의견을 내었다. 더구나 아무도 진출하려 하지 않기에 오히려 독점사업이 될 수 있다는 게 최종현의 판단이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