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성서식물원의 '겨자씨 한 알의 힘' … 부부목사의 가슴아픈 사연에 뭉클해

구약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남자 아담과 여자 이브를 창조해서 아름다운 에덴 동산에서 살게 합니다. 이 때 하느님은 이들 남녀에게 절대로 선악과만은 따먹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런데 이브는 간교한 뱀의 꾐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에게도 먹게 합니다. 그러자 이들은 갑자기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알게 되고 자신들이 알몸인 것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앞을 가렸습니다.
이렇게 성경에는 아담과 이브를 비롯해서 예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언행을 담은 이야기뿐 아니라 이들이 의지하고 살았던 의식주와 관련이 있는 식물이 수없이 등장합니다. 무화과는 첫 번째로 등장해서 유명해진 식물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식물은 100여 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성경에 등장하는 나무와 풀을 성서의 발상지인 이스라엘에서 구해다 키우며 관광객들에게 전시해주는 독특한 식물원이 제주도에 있습니다.
이 식물원이 소재한 곳은 제주시 한림읍 상명리라는 조그만 마을입니다. 귤 과수원과 야채 농사로 먹고 사는 농촌 마을입니다.

식물원의 이름은 '제주성서식물원 비블리아'입니다. 비블리아는 라틴어 'Biblia'로, 성경 또는 성서(聖書)를 뜻합니다. 이 작은 식물원은 성경에 등장하는 식물 100여 종을 원산지 이스라엘에서 직접 구해다 키우며 관광객에게 보여줍니다.
관광시설이라면 없는 게 없을 정도로 제주도에는 박물관, 전시관, 식물원, 정원 등이 즐비합니다만, 비블리아는 아마 우리나라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독특한 관광시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독교 신자든 아니든 성경을 대할 때 하느님과 예수 및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언행에 관심이 모이기 마련이지, 거기 나오는 풀과 나무 따위엔 큰 관심을 두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서식물원을 특이한 곳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성서식물원 비블리아를 만든 사람은 60대 중반의 부부 목사 이태용‧김만임 씨입니다. 두 사람 모두 개신교 목사입니다.
경기도에서 태어난 이씨와 광주에서 태어난 김씨는 성경 공부를 하면서 연애를 시작했고 제주도에서 신혼살림을 차렸습니다. 대학에서 식물을 공부한 남편 이 목사가 1986년 '여미지' 식물원의 원예사로 취직하게 된 것이 제주살이의 인연이 되었습니다.
이들 목사 부부는 성경에 등장하는 식물을 통해서 창조주의 메시지를 전하며 사람들에게 치유의 숲을 만들어 보자는 뜻을 모았습니다. 2006년부터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성지순례 목적은 남달랐습니다. 히브리 대학의 성서 식물원을 찾아가 공부하고 종자와 묘목을 구해오기 시작했습니다. 식물의 수출입 통관은 매우 까다롭지만 그들은 100여 종을 이스라엘 원산지에서 들여다 남의 밭을 빌려 심고 키웠습니다.

드디어 2010년 목사 부부는 없는 돈을 긁어모아 평당 8만원에 땅 4천 평을 샀습니다. 아직 중국 부동산붐이 상륙하지 않았고 상명리가 중산간 외진 농촌이어서 가능했지, 뒤늦게 불었던 중국인 부동산 광풍이 조금만 빨리 제주도에 상륙했다면 엄두도 못낼 일이었습니다.
이 식물원을 찾는 일반 광광객은 아직 많지 않습니다. 제가 이 식물원을 구경하는 30여분 동안 이곳을 찾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단체 여행으로 오는 사람이 주 고객이라고 합니다. 코로나19로 단체 여행이 중단되었던 3년간 식물원 운영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사실 일반 관광객을 상대로 하기엔 시설이 초라해 보입니다. 우기에 잘 자라는 제주도 토종 초목 사이에서 이스라엘 사막에서 옮겨진 지중해성 식물들은 힘에 부치는 것 같습니다. 휴게실과 회의실을 겸한 비닐 하우스를 제외하고는 부대시설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가난한 식물원입니다.
무화과와 더불어 성경에서 쌍벽을 이루는 나무가 바로 올리브 나무입니다. 하느님이 타락한 인간을 홍수로 벌할 때 노아에게만은 배를 만들어 식구와 동식물을 태우고 피신토록 합니다. 홍수로 세상이 다 잠겨 노아의 방주가 아랏라트 산 정상에 걸려 있다가 물이 빠지기 시작하자 노아는 비둘기를 날려보냅니다. 처음에 비둘기는 앉을 곳이 없어 그냥 돌아왔으나 두번 째 나갔다가 돌아올 때는 입에 올리브 잎을 물고 왔습니다. 올리브는 기원 전 그리스에서부터 평화를 상징하는 나무로 서구인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고대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머리에 씌워주는 월계관도 올리브 잎이었습니다. 성서식물원 중앙에는 종탑이 있고 그 주위에 올리브 숲을 배치했습니다. 화창한 오월 햇볕에 올립의 은녹색 잎이 반짝였습니다.
저는 이 식물원에서 미스테리 하나를 풀었습니다. 옛날 성경에는 '감람나무'니 '감람동산'이란 말이 자주 등장했는데 그게 뭔지 궁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구태여 알 필요도 없었지만 이 식물원을 안내한 김만임 목사가 그게 올리브 나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사람들이 환호하며 손에 들고 흔들어 댔던 것이 종려나무(대추야자) 가지입니다. 선악과로 알려진 '답부아'는 이스라엘 사과나무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기 위해 아들 이삭을 묶으려고 껍질을 벗겨 밧줄을 만들었던 나무가 '아브라함밤'입니다. 습기에 강한 코페르 나무(이태리 편백)는 노아의 방주를 건조했던 나무라고 합니다. 예수의 머리에 씌워졌던 가시관은 가시대추나무로 만들었습니다. 예수를 배신한 제자 가롯 유다가 목매달아 죽은 나무가 '서양박태기 나무'로, 영어 이름이 'Judas Tree'입니다. 백향목은 솔로몬이 성전과 궁전을 지을 때 사용했던 나무로 레바논 국목(國木)입니다.
임산부가 이 나뭇잎 향기를 맡으면 영리한 아이를 낳는다는 전설을 지닌 화석류나무(미르투스)는 이스라엘에선 좋은 선물감이라고 합니다. 그밖에 '포도나무' '선인장' '우슬초' '마리아엉겅퀴' '쥐엄나무' '월계수' '호랑가시나무' '파피루스' '시트론' 등 각종 초목이 학명, 영어명, 관련 성경구절 등이 붙은 이름표를 달고 있습니다. 모두 이스라엘에서 직접 들여온 초목들입니다. 심지어 갈대도 있습니다. 같은 종류가 한국에서 서식하는데도 불구하고 직접 이스라엘에서 구입해왔다 하니 부부 목사의 결벽성으로 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김만임 목사는 식물원을 안내하며 가끔 손으로 잎사귀를 따서 냄새를 맡아보고 나에게 냄새를 맡아 보라고 했습니다. 진한 허브향이 코끝을 찔렀습니다. 지중해성 기후에서는 강한 향을 지닌 허브 식물이 많이 자란다고 합니다.
목사 부부가 정성을 쏟아 이 식물원을 조성한 데에는 가슴이 찡한 사연이 있습니다.

저를 안내하던 김 목사가 키 작은 풀밭 앞에 멈춰 서더니 풀꽃을 손으로 훑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나직히 말했습니다. "이게 겨자입니다. 식물원을 만드는 데 하나의 밀알 역할을 한 것이 이 겨자씨입니다." 이 말을 하는 순간 그녀의 눈시울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20년 전 목사 부부에게는 아들 둘이 있었습니다. 큰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일 때 단체로 한라산 정상에 등산을 갔다왔는데 아프자 병원에서 주사를 맞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튿날 아들은 일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의료사고였던 모양입니다.
목사부부는 자식을 잃은 고통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아무 것도 할 의욕을 잃었습니다. 그저 신앙심에 의지하며 나날을 보냈습니다. 어느날 김씨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깨달음의 계기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겨자씨 비유였다고 합니다.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다면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라는 예수의 비유에 그들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겨자씨의 비유를 떠올리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 식물을 통해서 하느님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해주며 치유의 동산을 만들자." 이게 이들이 성서식물원의 꿈을 20년 이상 키워온 힘이었습니다.
처음 이 식물원을 봤을 때 문득 떠오른 단상은 서울의 대형교회가 손을 댄다면 정말 멋있는 식물원을 만들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초등학생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낸 이들 부부 목사의 사연을 들으니 초라했던 식물원이 거룩하게 보였습니다.
식물원 구경을 마친 저에게 김만임 목사가 얇고 투명한 작은 천 주머니를 쥐어주었습니다. 식물원을 안내하며 따낸 잎사귀를 담은 주머니였습니다. 주머니에서는 며칠동안 잎이 말라가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새어 나왔습니다.
비블리아가 좋은 '치유의 에덴동산'으로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