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31 00:45 (금)
[스승의 날 특별 기고] 老교수의 마음을 움직인 착한 제자
[스승의 날 특별 기고] 老교수의 마음을 움직인 착한 제자
  • 송명견(동덕여대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 mksongmk@naver.com
  • 승인 2024.05.15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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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처음 만난 40년 넘는 인연…이태리서 성공한 뒤 유럽으로 은사 초청해 뒷바라지
점심 도시락 싸오지 못해 느티나무 아래서 서러움 숨기고 토큰 빌려준 학생 지금도 찾아
師道가 땅에 떨어졌다지만 이런 제자들은 ' 성공적인 삶 '을 산다고 노 교수는 굳게 믿어
선생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사는 마음씨 고운 제자는 행복한 삶을 산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어느 제자가 노 교수 부부를 초청하였다. 체코 프라하와 오스트리아가 목적지였다. 제자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패션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때문에 제자에게는 무리한 목적지였다. 제자 덕분에 노 교수 부부는 안개 자욱한 알프스 끝자락 산막에서 구수한 커피와 우아한 식사를 즐기고, 맑고 푸른 호수를 낀 아름다운 자연과 도도한 역사의 현장, 세월의 보물이 가득 쌓여있는 박물관들을 돌아보며 꿈같은 일주일을 보냈다.

여행 일정을 짜는 일은 물론 여행 경비도 모두 제자가 부담하였다. 마치 효녀 딸이 노부모님을 모시고 여행하는 것 같았다.

한편 그 제자가 경영하는 회사에서는 사장님이 처리해야만 할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져 경제적 손해가 컸다고 했다. 제자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지만, 노 교수 부부에게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가슴 벅찬 기쁨이고 보람된 시간이었다. 말수 적은 노 교수의 남편도 한동안 아내의 기특한 제자 자랑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 나지 않아 노 교수의 남편은 저 세상으로 떠났다. 딸이 없는 이분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딸(?)과의 '효도 여행'이었던 것이다.

진희라는 이름의 그 제자와 교수는 1982년 처음 만났다. 그로부터 40년 넘게 긴 인연을 이어왔다. 진희는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고생하며 학교에 다녔다. 점심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 우거진 느티나무 아래에서 서러움을 숨겼고, 집에 돌아가는 데 필요한 토큰(버스요금)이 없어 생면부지 학생에게 빌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 학생을 찾고 있다고 했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한 뒤 진희는 맨주먹으로 이탈리아로 건너가 밀라노의 모든 패션스쿨을 섭렵한 후 PEGASUS라는 패션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다. 이탈리아와 한국의 패션을 연결해주고, 낯선 이국 땅에 와서 허둥대는 한국의 패션 관계자들을 잘 도와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친구였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정년을 목전에 둔 노 교수가 밀라노 도무스 아카데미의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다. 세미나는 바로 이 제자가 한국 패션전공 교수들을 위해 특별히 기획한 것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평소 약골이던 노 교수가 대형 사고를 쳤다. 밀라노 도착 다음 날이었다. 세계적인 패션 거리인 Montenapoleone 투어 중 아르마니 매장에서 복통으로 쓰러졌다. 시차 적응이 안 된 데다 더운 날씨에 편치 않은 이탈리아 음식이 화근이었다.

그날 저녁부터 한국 음식이 노 교수 앞으로 배달되기 시작하였다. '복통 소동'은 밀라노에 와 있는 다른 제자(이영진)에게도 알려지고, '교수 속 편한 밥 먹이기 작전'이 전개되었다. 영진도 소녀가장 출신이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취직해 병약한 홀어머니를 모시고 세 동생을 대학까지 공부 시킨 또순이였다. 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자 그도 그토록 가고 싶었던 대학에 늙은 학생으로 입학했다.

말 그대로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주경야독이었다. 4년 내내 1등을 놓치지 않고 학업을 마쳤다. 졸업 후 진희가 후배 영진의 밀라노 유학길을 열어주었다. 손에 달랑 비행기 표 한 장을 쥐고 유학길에 올랐던 영진은 학업을 마친 후 현지인과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매 식사 때마다, 교수가 가는 곳마다 한국 식탁이 따로 차려졌다. 함께 이탈리아에 갔던 30여명의 교수들은 매끼마다 이 진풍경을 구경했다. 그리고 입을 모았다. "어쩌면 제자들이 저렇게 할 수가 있을까?" 자신들도 밀라노에 제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찾아오는 제자도, 전화 한 통화 하는 제자도 없다고 했다. 복통으로 쓰러졌던 그 노 교수, 갑자기 동료 교수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여행 중 어느 날 안내를 맡은 진희가 특이하고 값비싼 진주 목걸이를 하고 나왔다. 이집트에서 거금을 주고 산 것이라고 했다. 그것을 본 노 교수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전날 길거리에서 산 싸구려 가죽 팔찌를 보이며 "그거 좋은데 이 팔찌와 바꾸자"고 했다. 좌중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밀라노 공항에서다. 이별의 아쉬움을 나누던 스승과 제자, 진희가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예쁜 주머니였다. "교수님, 이거 가져가세요. 예쁘게 하시고 누군가에게 물려주실 때 제게 선물하세요." 그 주머니에 든 내용물은 바로 그 진주 목걸이였다. 깜짝 놀란 교수가 펄쩍 뛰며 사양하였다. 제자가 양보하지 않았다. 성화에 못 이겨 필경 그 마음을 받았다.

한국에 돌아와 아주 중요한 날, 그 목걸이를 딱 한번 하였다. 그리고 깨끗이 닦아 고이 싸두었다. 진희가 한국에 왔을 때 그 '보물'을 다시 선물(?)로 내주었다. 그 제자의 마음을 받은 것만으로도 더 없는 선물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이번엔 제자가 사양하였다. "이것을 하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이것으로 충분하다. 나를 거친 이 목걸이는 이제 네 목에서 더욱 아름답게 빛날 거다···"라며 교수가 기어이 제자 손에 쥐어주었다.

밥을 해 나르던 제자에게서 메일이 왔다. "··· 수고라니요. 반찬은 없었지만 제 손으로 식사를 준비해 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노교수는 울컥하였다.

지금도 진희는 밀라노에서 일하고 있다. 사업이 더욱 번창하였음은 물론 거대 패션회사인 H사 최고경영자(CEO)로 발탁되어 맹활약하고 있다. 기사가 딸린 차가 제공된다고 했다. 의류업체에서 결코 쉬운 대우는 아니다. 이런 진희를 바라보는 일은 노 교수의 큰 기쁨이고 자랑이다.

영진의 삶도 활짝 폈다. 성실하고 착한 남편과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피부색이 다른 동양인 며느리라고 가벼이 여기던 시댁 어른들을 얼마나 잘 섬겨 감동시켰는지 이탈리아의 유명 휴양지 토스카나 소재 별장을 남편의 이모님에게 유산으로 받았다. 요즘에는 혼자된 노 교수가 외로울까봐 매일 전화한다. 토스카나의 꽃, 풀, 나무, 푸른 바다, 몰래 찾아오는 들짐승들을 사진으로 보내며 꼭 오시라고 한다. "비행기 오래 탈수 없어 못가"라고 노 교수가 답하자 "제가 나가서 모시고 오면 되지요." 노 교수, 가지 못해도 이 마음, 이 말 한마디로 행복하기 그지없다.

사도(師道)가 땅에 떨어졌다고들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제자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제자들이 반드시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산다고 노 교수는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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