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으로 봉안된 불상 좌우에 달라이 3,4세의 동상 서있고 벽화 생동감
아침에 일단 역으로 가서 후룬베이얼로 가는 기차편이 있는지, 차표를 구할 수 있는지 알아봤으나 기차표는 열흘 후까지 모두 매진되고 구할 수 없어 여정을 바꾸기로 결정하다. 밖에는 비가 내린다. 비도 피하고 늦은 아침도 먹을 겸해서 호텔 부근의 중국식 패스트푸드점에 들러 훈둔과 빠오즈 (고기만두) 두 개 그리고 작은 채소 반찬 2가지를 시켰다. 21위안이다. 식사후 중심가인 중산제( 中山街)로 이동하여 이 거리 초입에 입지해 있는 맥도날드점으로 가서 드립이 아닌 아메리카노 한잔(17위안)을 주문했다. 머그잔에 부어준 커피를 오전 시간 고객이 드문 시간에 넓은 매장을 거의 독점하면서 여유롭게 한잔 마시니 여독도 좀 풀리고 기분이 좋아진다. 피곤하고 나른할 때 커피의 특유한 약효가 있다고 느껴진다. 커피를 마신 후 중심거리인 이곳의 췌차오 호텔이 대폭적인 바겐세일을 한다는 현수막을 보고 방이 마음에 들어 묵고 있던 소군호텔에서 나와 이 호텔로 짐을 옮겼다.
여행을 다니면서 중간에 시가지를 탐색하면서 값이 싸고 좋은 호텔이 눈에 띄면 일정을 중단하고 방을 옮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오늘도 방을 바꾸게 되었다. 깨끗하면서도 환한 두꺼운 양탄자가 바닥에 깔려있고 침대며 테이블 기타 집기도 완전히 순백색이어서 아주 깔끔하고 고급스런 느낌을 준다. 세면대와 샤워부스도 완전히 유리로 내외가 차단되어 있고 수압도 좋았다. 방을 옮긴 후에도 여전히 비가 내려 방에서 1시간여 휴식을 취하자 하늘이 맑아 온다.
날이 갠 후 밖으로 나섰다. 어제 산책했던 회민가 반대편으로는 발길을 옮기니 멀리 몽골풍의 건물군들이 한가득 눈에 들어온다. 저절로 발길이 이곳으로 이어진다. 10분 정도 걸었더니 거대한 규모의 전통건축물 외관인 기와지붕 건물 수십 채가 뚜렷이 보였다. 도로 양켠으로 한 곳은 大召사이고 건너편은 연수사였다.
원래 대소사는 시장자치구 라싸에 있는 유명한 티벳불교사찰이 아니던가? 오전에 많은 비가 와서인지 낮인데도 아주 시원한 느낌이 들고 이곳 절이 더할 수 없이 편안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이 사찰은 티벳불교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최대 종파인 겔룩파의 사원으로 한자 召는 티벳어로 寺廟의 의미라고 한다. 원래 이절의 이름은 弘慈寺였으나 후일 無量寺로 바뀌었고 절 안에 은으로 만들어진 불상이 봉안되어 있어 銀佛寺로 부르기도 한다.
대소사는 후허하오트에서 가장 오랜 티벳불교사원일 뿐 아니라 이곳에는 활불이 주재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청조시기 강희제가 이곳을 참관하고 며칠간 머문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승려들이 활불의 전세규정을 취소했다고 자료는 설명하고 있다. 대소사의 대지면적은 3만여평방미터에 건축면적만 8천여평방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사찰이고, 주요건축으로는 산문, 천왕전, 보리과전, 구간루, 경당, 불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경당과 불전은 함께 연이어있고 보통 ‘대전’이라고 부른다.
대전은 유일하게 漢藏건축양식이 혼합된 티벳불교사원 양식을 보여주고 있고, 불당의 정중앙에 한 좌의 높이 2.55m의 은불상이 모셔져 있어 이 절을 무량사에 이어 은불사라고도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銀佛의 좌우에는 각각 겔룩파(황교파) 티벳불교를 개창한 총갓파대사와 달라이 3,4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와 함께 대전 내에는 각종 조상과 벽화가 그려져 있고 은불상은 4백여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고 있다.
이 사원은 청조 초기 순치제가 달라이라마 5세를 만나고 북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며칠 머문 적도 있고, 강희제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皇帝萬歲”란 편액이 걸려있어 이 절은 皇廟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최고권력자인 황제와 관련이 있는 사찰인 만큼 중요성이 크고 규모나 사찰 내의 시설물도 여느 절과는 다르다. 석가모니상 앞의 기둥에는 금빛 목각의 거대한 용이 나무기둥을 기어오르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어 황실과의 관련성을 보여주고 있다.
벽화는 대소사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로 벽화의 내용이 아주 풍부하고 화면에 생동감이 넘친다. 불교에 등장하는 각종 인물 중심으로 천상의 세계와 인간, 지옥의 각종 모습을 보여준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불타와 外道六師가 벌이는 경전에 대한 논쟁과 다툼을 소재로 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체 벽화는 서로 이어져 있고 등장하는 캐릭터는 神佛과 범속의 인간 등 모두 770여에 이르고 그 장면이 웅대하고 스케일이 거대해 장관을 이룬다. 명왕조 시기 중국 회화예술의 집대성이라 할 만한 이 벽화는 지금까지 여전히 그 화려한 색감이 조금도 퇴색하지 않고 빛나고 있다.
이밖에 대소사 산문의 처마 밑에 “九邊第一泉 ”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즉 이것은 대소사 앞의 玉泉井을 일컫는 것으로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청조의 강희제가 몽골 웨이라트부 갈단의 난을 평정한 후 개선하는 도중 대소사를 들러 말발굽이 땅을 치자 샘이 용출했다는 것이다. 비문에 샘물은 맑고 달다고 기록되어 있다.
몽골족이 신앙하는 불교는 바로 티벳불교로, 이 사찰의 공간배치나 불전 내에 존봉되고 있는 부처와 보살 그리고 나한도 주로 티벳불교의 영향으로 구성된 티벳불교사원이다. 청조는 대륙 통치의 방책상 티벳과 몽골 등에 종교적인 우대책을 시행하면서 한족 주변에 거주하는 이들 민족을 활용하여 한족을 견제하는 정책을 구사해왔다.
사찰 곳곳에 그려진 탕카와 이른바 환희불의 모습은 다소 관능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악마의 악행을 잠재우기 위해 관음보살이 미녀로 환신, 환희불의 모습으로 마왕의 일탈을 견제한다는 교접의 모습은 신성한 절에서 묘한 에로티시즘을 불러일으킨다. 한 전각에는 보살의 모습일텐데 수십여 불상이 여성의 관능적인 모습으로 젖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껏 불상은 남성상으로 인식해왔고 설사 여성상의 불상이라도 옷을 입은 모습이었는데 이곳의 불상은 한쪽 가슴을 드러내고 있어 좀 특별한 불상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찰의 벽체에는 주요 티벳불교의 교리와 불사에 대해 설명하는 문장이 가득하다. 읽어보니 티벳불교 교리가 정리가 잘 되어있고 초신자나 티벳불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아주 유용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