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뉴욕 브로드웨이에 47층짜리 사옥…기성복 시대변화 못읽어 1999년 파산
경영위기 겪던 日 야마자키, 장난감 제봉틀에 이어 '남성 재봉틀' 내 놓아 인기 몰이
재봉틀 발명은 여성을 노동에서 해방시킴은 물론 패션산업의 첫발이었다. 봉제 기계 발명은 1790년 영국에서 시작되었지만, 기능적인 '바느질 기계'는 1846년 미국인 엘리어스 하우(Elias Howe)가 개발하였다.
하지만 재봉틀의 상품화에 성공한 사람은 미국인 아이작 메릿 싱어(Isaac M. Singer)였다. 그는 엘리어스의 재봉틀과 달리 발로 작동하는 제품을 만들어내 1851년 특허를 획득했다. 그리고 그해 40달러를 빌려 뉴욕에 '싱어' 회사를 차렸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마흔이었다. '싱어 재봉틀 시대'는 그렇게 열렸다.
싱어의 판매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1867년 스코틀랜드에 공장을 지으며 세계 최초로 다국적 생산회사로 등극하였고, 1908년에는 뉴욕 브로드웨이에 47층짜리 사옥을 세웠다. 당시로선 초고층 빌딩으로 최초의 현대식 마천루였다. 이후 장장 150여년 동안 대를 누리는 재벌로 군림했다.
우리나라에 재봉틀이 들어온 것은 1877년이다. 강원도 금화(金化)에 사는 김용원씨가 일본에 갔다가 서양 사람에게서 이 기계를 사왔다고 한다. 이것을 본 당시 사람들은 마치 요술인 양 감탄했다고 한다. 1896년 이화학당의 교과목에 '재봉'이 등장하였고,
1904년 3학년 과목에는 '재봉기 사용법'이 포함되었다. 1905년 12월 20일자 <제국신문>에 '싱어 재봉 기계회사의 지점' 설치 광고가 게재되는 등 재봉틀의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1960년대 초에는 국내에서도 재봉틀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특히 1960·70년대에는 재봉틀이 혼수품 1호가 되어 각 가정의 안방을 차지하는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어렵던 그 시절 재봉틀 하나로 가정을 꾸리고 자식들을 교육하는, 이른바 '삯바느질'이란 경제활동이 여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기도 했다. 바야흐로 패션산업의 첫발을 뗀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적으로 '바느질 문화'에 혁명적 변화가 일었다. 기성복 시대가 열리며 '바느질 장소'가 가정에서 공장으로 바뀌어갔다. 그 결과 가정에서 재봉틀이 하나둘 사라져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싱어는 이런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1999년 9월 그동안의 영화를 뒤로 하고 파산하는 비극을 맞아야 했다. 전 세계 안방에서 사랑받던 싱어는 그렇게 사라져갔다.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한 시장 변화의 흐름을 뚫고 히트 상품을 연달아 내놓는 재봉틀 회사가 있다. 일본 기업 악스 야마자키다. 창업주의 아들이 2005년 파산 위기의 재봉틀 사업에 뛰어들었고, 마침내 벼랑 끝의 이 회사를 일으켜 세웠다. 성공의 비결은 고객을 세분화해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철저히 조사 분석하여 고객맞춤형 제품을 하나씩 만들어 나간 것이었다.
첫 히트 상품은 장난감처럼 만들어 2015년 선보인 어린이용 털실 재봉틀이었다. 스위치를 켜면 천을 꿰맬 수 있는 단순한 기능이었지만, 아이들이 바늘에 손가락을 다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대당 가격이 7980엔(약 8만원)으로 장난감으로는 결코 적지 않은 가격이었으나 두 달 만에 2만대 이상, 누적 13만대를 판매했다. 대성공이었다.
이를 지켜본 어머니들이 관심을 보이자 이번에는 '육아에 딱 좋은 재봉틀'을 만들어냈다. 제품을 가볍고 작게 만들어 수납장에 넣었다 꺼내기 쉽게 했다. 4kg이었던 재봉틀 무게를 2.1kg으로 가볍게 하고, QR 코드를 읽으면 동영상으로 사용법을 가르쳐줘 초보자도 따라 할 수 있도록 했다. 2020년 3월 발매 후 1년 만에 5만대를 팔았고, 현재까지 누적 판매량이 10만대가 넘는다.
여세를 몰아 2021년에는 고령자를 목표 고객으로 '손자 손녀를 위한 나만의 재봉틀'을 출시했다. 이어서 올해 2월 '남성을 위한 재봉틀'까지 내놓았다. 이 제품도 주문이 쇄도해 예약한 뒤 받기까지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악스 야마자키는 변화하는 재봉틀 시장에서 고객 니즈에 맞춘 특화된 제품으로 소비자 지갑을 열도록 만들었다. 나아가 일본의 모든 가정이 재봉틀을 한 대씩 가지도록 하겠다는 야무진 비전을 차근차근 실현해 나가고 있다. 변화하는 시장에 대한 기민한 대응은 기업 지속 가능성의 필요충분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