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화폐인 엔화의 가치가 급락하면서 19일 원/엔 환율이 8년 만에 800원대로 들어섰다. 세계 주요국들이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통화긴축 정책을 펴는 와중에도 일본은행(BOJ)은 홀로 통화완화 정책을 이어가면서 엔화 가치가 빠른 속도로 하락하는 추세다.
이날 오전 8시 23분 기준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897.49원이었다. 원/엔 환율이 800원대에 진입한 것은 2015년 6월 25일 이후 8년 만이다. 지난 4월말 100엔당 1000원을 넘나들었는데 두 달 만에 100원 정도 떨어졌다.
원/엔 환율은 19일 800원대를 터치한 뒤 소폭 올라 오전 장중에 100엔당 900원대 초중반을 오르내렸다.
미국과 유럽의 통화긴축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일본만 통화완화 정책을 유지하면서 엔화 가치를 끌어내리고 있다. 일본은행은 지난 16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어 일본은행 단기금리를 마이너스(-0.1%) 상태로 동결하고,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금리를 0% 수준으로 유지했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자 국내에서도 엔화를 싼값에 사려는 수요가 늘었다. 일본 여행이 증가하고, 엔테크(엔화+재테크)에 따른 차익 기대감이 반영됐다.
국내 4대 시중은행이 지난달 엔화로 환전해준 금액은 301억6700만엔이다. 4월(228억3900만엔)보다 73억2800만엔 늘었다. 1년 전(62억8500만엔)과 비교하면 약 5배 증가했다.
엔화를 싸게 사서 일본에 여행 갈 때 쓰려는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 관광국 집계에 따르면 올 1~4월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206만77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25배 증가했다.
엔화 투자도 늘었다. 4대 시중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15일 현재 8109억7400만엔이다. 지난달 말(6978억5900만엔) 대비 16% 늘었다. 향후 엔화값이 오름세로 전환될 것으로 보고 저점에 사두는 투자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주가가 상승하는 일본 증시에 투자하는 '바이 재팬(Buy Japan)' 현상도 나타났다. 국내 8개 대형 증권사에 예치된 엔화 예수금 및 일본 주식 평가금액은 15일 현재 4조946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인 지난해 6월말(3조1916억원) 대비 28.3% 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 입장에서 엔저 장기화는 악재가 될 수 있다. 일본행 여행객이 늘면서 여행수지 적자 폭이 커지고 경상수지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1분기 여행수지 적자는 32억3500만달러로 2019년 3분기(32억8000만달러 적자) 이후 가장 크다.
엔저는 우리니라 수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은 자동차·철강 등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미국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가 1%포인트 하락하면 한국의 수출 물량은 0.2%포인트, 수출금액은 0.61%포인트 낮아진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