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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노동자 일깨운 '강도귀족'
[김성희의 역사갈피] 노동자 일깨운 '강도귀족'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3.05.23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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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1890년대, 철도·철강·금융·석유 등 기간산업서 부정과 독점으로 돈방석에 앉아
하루살기가 힘든 노동자와 달리 '100달러짜리 지폐로 만 담배' 피우는 등 호사로 눈쌀
베풀면서 겸손하게 살지 않아 노동자 각성 … 1886년 5월1일 美노동자총연맹 총파업
오늘날 노동자들의 권리가 그나마 확립된 것은 '도금시대'를 주름잡았던 '강도귀족'들 덕분이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미국사를 들춰보면 '강도귀족(robber baron)'이라 불리는 일군의 대부호들이 등장한다. 미국이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전환하던 1860~1890년대, 철도·철강·금융·석유 등 기간산업에서 갖은 부정과 모략, 부당한 독점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이들이다.

말 그대로는 '강도 남작'이지만, 귀족의 한 단계인 이들의 계급적 성격을 부각하기 위해선지 보통 이렇게 옮긴다.

이들은 부를 쌓은 과정도 문제적이지만 부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더 이목을 끌었다. 이른바 과시적 소비다. 갓난아이에게 자장가를 들려주려 오케스트라를 부르거나 100달러짜리 지폐로 만 담배를 피우고 자기 개에게 1만 5천 달러 상당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한 사례도 있었다. 『메이데이 100년의 역사』(역사학연구소 지음, 서해문집)에는 "자본가들이 다이아몬드로 이빨을 해 넣고 구미를 돋우겠다고 원숭이탕을 해 먹으며…7만 5천 달러짜리 쌍안경으로 연극을 관람…"

이 어지러운 시기를 미국사에서 '도금시대(The Gilded Age)'라 부른다. 번쩍이지만 천박했던 시대상을 그리는 말로, 마크트웨인의 풍자소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반면 당시 노동자들은 하루 14~15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생존에 겨워하는 형편이었다. 빈부 차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벌어지면 사회적 반발이 없을 수 없다.

1886년 미국노동자총연맹은 하루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5월 1일 총파업을 단행하기로 했다. 그날 미 전역에서 34만 명의 노동자가 시가행진에 나섰고, 19만 명이 파업에 참가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폭력이었다. 5월 3일 파업 농성 중이던 맥코믹 농기계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의 발포로 6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다음 날 이에 항의하던 노동자들의 헤이마켓 광장 집회에서는 폭탄이 터졌는데 미국 정부는 이를 노동자의 소행으로 몰아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체포해 그중 스파이즈 등 4명을 교수형에 처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회주의계 근로자 및 사회주의 단체의 국제 조직인 제2인터내셔널은 1890년 5월 1일부터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는 국제 시위를 벌이기로 한다. 공식적으로는 '근로자의 날'이라 부르지만, 노동계에서는 '노동절' 혹은 '메이데이'로 불리는 기념일의 시작이었다.

그러니 뒤집어 보면 오늘날 노동자들의 권리가 그나마 확립된 것은 '도금시대'를 주름잡았던 '강도귀족'들 덕분이랄 수도 있다. 그들이 베풀면서 겸손하게 살았다면 노동자들의 각성은 그만큼 늦어졌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주 5일, 52시간 근무제를 두고 단축론이 거론되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참으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로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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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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