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능오 노무사의 노동법률 이야기] ⑬ '근로자'와 '노동자'

현실적으로도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같은 뜻'의 용어 … 언론에서도 혼용 노동운동권이나 진보정당은 '노동' 선호…일본헌법엔 '노동',북한은 '근로' 사용

2023-03-16     권능오 노무사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시도하자 국민의 힘은 '대통령거부권'까지 거론하며 이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노동 이슈를 다루는 신문이나 방송기사를 보면 '근로'나 '노동', 또 '근로자'나 '노동자'를 혼용해서 쓰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일반인들은 그 뜻의 차이를 몰라도 상관없지만 '근로'자의 '노동'력을 필수적으로 기업경영에 활용하는 경영자들은 그 개념을 정확히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 단어는 국어학적 차이는 둘째 치더라도 현실적으로도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같은 뜻의 단어라 봐도 좋을 것이다.

물론 굳이 이 두 단어를 의도적으로 구분하여 쓰려는 사람들도 있다.주로 노동운동권이나 진보정당 쪽 사람들의 주장인데, 그들은 "'근로'라는 단어는 일제 식민지 시절에 그 뿌리를 둔 단어로서 특히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노동운동을 탄압하고 '노동자'로서의 투쟁의식과 연대의식을 말살하기 위해 '노동'이라는 단어 대신 '근로'라는 말을 쓰게 했다. 5월 1일 노동절도 3월 10일로 옮겨가 '근로자의 날'로 만들었다"라고 생각한다.

2019년 당시 민주당이 다수당이었던 서울시 의회는 서울시와 서울교육청의 50여 개 조례에서 '근로'라는 용어를 삭제하고, 그 자리를 '노동'이라는 단어로 바꾸기까지 했다.(가령 조례 속 '근로자'가 '노동자'로, '근로계약서'는 '노동계약서로, '공공근로요원'은 '공공노동요원'으로식으로)

그런데 이런 의도적인 '노동' 사랑(?)과는 달리 현실에서 실제 사용되는 사례들을 국가별로 살펴보면 먼저 우리나라 헌법에는 헌법 32조를 비롯하여 '근로'라는 단어가 10번 넘게 나온다. ​노동 관련 법률들의 내용을 봐도 '근로'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법령에서 '노동'이라는 단어를 쓰는 경우는 1)노동관계 2)노동조합 3)고용노동부 4)노동위원회 5)(정신·육체)노동 6)노동쟁의 7)부당노동행위 총 7가지에 불과한데 노동법학자나 노무사들도 '근로'와의 의미상 차이를 두지 않고 있다.

한편 자민당이 장기집권하고 있는 대표적 보수국가인 일본은 '노동기준법''노동계약법' 에서 알 수 있듯이 대개 '노동'이라는 표현을 전반적으로 쓰고 있다. 반일정서가 강한 우리나라 진보 진영에서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인데 그만큼 두 단어 간의 차이가 없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북한은 '조선노동당'이라는 집권당 이름을 빼고는 '노동' 용어 보다는 '근로'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쓰는 듯하다. '근로인민대중'이라는 용어라든지 심지어 북한 국가 가사에서까지 '백두산 기상을 다 안고 근로의 정신은 깃들어....'같은 내용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렇게 한국, 일본, 북한의 사례를 보면 공산주의,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사상과 노동, 근로 단어와의 관련성은 없다 하겠으며 따라서 '근로'가 '독재시대의 유산'이라는 것은 단견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근로'라는 단어가 일제시대의 유산이라는 주장도 명백히 틀린 주장이다. 1895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 교과서로 불리는 '국민소학독본'이 있는데 이 책에서 '노동'은 말 그대로 '육체적 생산 활동'을 의미한다는 것으로 나와 있고 '근로'는 '나라의 부강'과 '부지런함'의 뜻을 담고 있었다.

말은 그 특성상 다의성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 본질인데, 어떤 특정 단어가 특정의미만 담고 있고, 더더군다나 그 단어만이 옳다는 식의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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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오

서울대학교를 졸업 후 중앙일보 인사팀장 등을 역임하는 등 20년 이상 인사·노무 업무를 수행했다. 현재는 율탑노무사사무소(서울강남) 대표노무사로 있으면서 기업 노무자문과 노동사건 대리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회사를 살리는 직원관리 대책', '뼈대 노동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