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들파워 호주! 고민과 선택] ⑤ 자원 많지만 서민들은 '고물가 아우성'
철광석 등 자원과 농업 강국이지만 세계경제 공급불안 여파 못 피해 올 들어 6차례 금리 인상 불구 소비자 물가는 정부 목표 크게 웃돌아 자원은 풍부해도 일반 공산품의 제조 기반 취약해 수입가 부담 커져 한 그릇 음식값은 2만~2만8천원 … 코로나가 풀리자 임대료도 껑충
【멜버른=성태원 편집위원 겸 순회특파원】 "근로자·서민들은 인플레와 금리 상승, 주택 임대료와 동력비(전기·가스·휘발유 값) 상승 등으로 살기가 퍽 힘들어졌어요."
지난 9월 중순부터의 호주 방문 기간 중 현지인들로부터 비교적 많이 들은 얘기다. 경제 기초 체력이 튼튼하고 국제 사회에서 경제 선진국으로 불리는 호주에서 이런 말을 듣다니 다소 이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광석·석탄·LNG(액화천연가스) 등 천연자원과 농업 강국인 호주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경제 후유증으로부터 예외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호주 정부는 경제 연착륙과 후유증 탈피를 위해 인플레 제어와 인력 부족 문제 해결에 안간힘을 쓰고 있어 보였다. 하지만 실제 민생 경제 현장에서는 고통 소리가 사라지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호주 중앙은행 연방준비은행(RBA)은 올해 7%까지 높아질 것으로 보이는 인플레를 잡기 위해 올 들어 5월부터 6차례나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시동은 지난 5월이었다. 사상 최저 수준이었던 기준금리 0.10%를 0.25% 포인트 올려 0.35%로 높였다. 11년 6개월 만이었다.
지난 6~9월에는 4차례 연속으로 0.50% 포인트씩 인상하는 소위 '빅스텝'을 단행했다. 이달 4일엔 당초 예상 0.5%의 절반 수준이긴 하지만 또다시 0.25% 포인트 인상해 기준금리는 6개월 만에 2.60%로 높아졌다.
중앙은행이 단기간에 대폭 오른 기준금리로 인한 부작용을 감안해 속도를 조절했다지만 앞으로도 추가 긴축을 위한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는 게 문제다. 이런 가운데 호주 8월 소비자 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6.8% 상승했다. 중앙은행 물가목표 2~3%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물가와 금리 간 기 싸움이 벌어지는 가운데 근로자와 서민들의 생활 경제는 날로 위축되고 있다.
호주는 천연자원 대국이지만 일반 공산품 제조 기반은 취약한 편이다. 최근 환율 인상으로 공산품 수입가가 높아지면서 가계와 기업들의 지출도 덩달아 늘고 있다. 실제로 시드니, 멜버른, 캔버라 등을 다니며 치른 음식값, 교통비, 여행비 등은 만만치 않은 수준이었다.
근로자 소득 수준이 한국보다 높아 한국과 단순비교는 힘든 면이 있다. 하지만 외견상 물가가 "비싸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시내 음식점에서 사 먹는 음식 한 그릇 값이 보통 20 호주 달러(약 1만9천 원), 조금 낫다 싶으면 25~30 호주 달러(약 2만3천 원~2만8천 원)였다.
호주인들도 물가상승을 피부로 느끼며 가계가 압박을 받는다는 점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은행에 돈을 빌려 집이나 차를 산 사람들은 이자 부담이 늘어 고민이다. 집값은 떨어지고 있는데 주택 임대료가 계속 오르는 것도 부담이다. 임대료 상승은 특히 소득의 3분의 1 이상을 임대료로 지출하는 저소득층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최근 일간 디오스트레일리안 등의 보도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호주 주택 임대료는 1년 전보다 10.3% 상승했다. 이는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다. 지역별로는 브리즈번이 1년 전보다 14.1% 올라 가장 상승률이 높았다. 애들레이드는 12.5%, 시드니와 멜버른, 다윈 등도 10% 상당씩 상승했다.
금리가 오르면서 호주 주택 매매 시장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주택 가격이 5개월 연속 하락하면서 조만간 10% 선까지 떨어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임대료 급등의 주된 이유는 코로나19 완화에 따른 임대 수요 증가다. 호주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일어나자 국경 봉쇄에 나섰고 이로 인해 해외에서 유입된 임시 체류 인력들이 지난 2년간 대거 출국해 인력 부족 현상이 가중됐다. 현재 비어 있는 일자리만 49만여 개에 이른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최근 코로나19가 크게 완화되자 인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이민 절차를 재개했고 이민자 유입이 계속 늘자 임대 수요도 크게 높아진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동력비(전기·가스·휘발유 값)가 오른 것도 서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