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 ㉓영화에 대한 '외압'
영화 개봉 전부터 외교 마찰과 검열 가능성 등이 제기 되는 등 마음 고생 내부서 '촬영중단' 의견도 … 봉준호 감독 정치영화 만들 경우 반응 궁금
외교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검열에 걸릴 수 있다, 개봉이 어려울 수 있다, 흥행에 실패할 수 있다···. 영화 <위대한 독재자>는 개봉 전부터 온갖 외압과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내부에서조차 "영화 촬영을 중단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을 정도다. 그러니 영화에 대한 평가 이전에 영화가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위대한 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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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 글은 두 편의 영화 <클래식>과 <그때 그 사람들>의 사례를 분석하며 이들과 '프로파간다'의 관계에 대한 얘기로 끝을 맺었다. <클래식>에 대해서는 '친(親)장애인' 또는 '반(反)장애인' 프로파간다라는 논평이 나올 법 했는데 나오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개봉 전부터 '반(反)독재' '반(反)유신' 등의 진보ㆍ좌파 프로파간다 영화라는 비판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두 영화 모두 '프로파간다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영화였다. 하지만 하나는 심했고 하나는 아예 없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난 것일까? 필자는 두 가지 가능성을 말하고 싶다.
첫째, 프로파간다의 논란이 될 수 있는 '주제에 대한 집중' 문제다. 앞서 얘기했듯 특정 주제에 대한 감독의 '인포커스' 및 '아웃포커스' 전략은 절대적이다. 어떤 프로파간다의 주제를 어느 정도 철저하게 포커스인 또는 포커스아웃 시키느냐에 따라 '프로파간다' 얘기가 나올 수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화 <클래식>은 '장애인 현실' 문제는 철저하게 포커스아웃시켰다. 아예 프레임 내부에서는 다루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전략은 성공적이었으며 이로써 장애인 관련 프로파간다 논란은 생겨나지 않았다.
■ 강한 정치성, 선명한 주제 ··· '프로파간다' 논란 심화
둘째, 여기에 영화가 갖는 정치성향이 더해져야 한다. 영화가 정치성, 그것도 현실 정치성의 문제와 얼마나 얽혀 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한 마디로 '주제에 대한 집중'이 강하고 이 주제가 현실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 그 영화는 프로파간다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때 그 사람들>은 10ㆍ26이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해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다. 아무리 중립적으로 다루려 했다 해도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하나 더 추가된다. '주제에 대한 집중'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5ㆍ16정권은 친일파 정권이며 따라서 그 치하에 있었던 한국 역사는 쓰레기 수준의 암흑기"라는 '반(反)5ㆍ16' 프레임을 집요하고 강력하게 밀고 나간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일본어 독백과 대화, 노래 등이 이를 입증한다. '프로파간다 영화'라는 보수ㆍ우파의 비판을 감내하겠다는 의지가 없고서는 만들 수 없는 영화다.
정리해 보자. 필자가 보기에 특정 영화가 프로파간다의 논란에 휩싸일 수 있는 가능성은 첫째, 프로파간다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예민한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며, 둘째, 그 주제가 현실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경우 커진다. 만일 영화가 현실 정치와 관련 없으며, 사회ㆍ경제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주제라 해도 '아웃포커스' 또는 '아웃프레임'으로 처리했다면,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논란의 여지는 확실하게 줄어들 수 있다.
이 같은 이해를 이제 채플린의 위대한 걸작 <위대한 독재자>에 적용시켜 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왜 영화 <위대한 독재자>가 당시 그토록 심한 프로파간다 문제에 달렸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영화는 첫째, 프로파간다의 논란에 휩싸일 수 있는 주제를 매우 선명하게 다뤘으며, 둘째, 나아가 그 주제가 현실정치와 심하게 얽혀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채플린과 히틀러라는 두 인물의 캐릭터까지 맞물린다. 복잡하다.
이 복잡한 문제를 좀 쉽게 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다음과 같은 '가상기사' 또는 '가짜기사'로 출발해 보자.
"【가상기사】 <기생충>으로 세계 거장이 된 봉준호 감독이 최근 '블랙 코미디' 영화를 크랭크인한다고 해 화제다. 놀라운 것은 그 주제가 '정치', 그것도 현실정치라는 점이다. 그의 차기작 장르가 '정치 블랙 코미디'인 것이다. 하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이르다. <거대한 독재자(The Big Dictator)>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주인공이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며 배경이 '대만침공'이다.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를 오마쥬하며 처녀작 <플란다스의 개>의 느낌을 살리려 애썼다"는 봉 감독의 얘기에서 영화의 대략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2000년 개봉된 <플란다스의 개>는 '심상치 않은 블랙 코미디'라는 호평을 받았으나 흥행에서 참패, 봉 감독이 늘 아쉬움을 드러냈던 그의 첫 데뷔작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기사는 '가상'이며 '가짜'다. 필자가 채플린의 영화 <위대한 독재자>를 얘기하기 위해 임시로 만들어본 것이다. 그럼에도 '실제'라고 생각해 보자. 봉준호 감독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만을 침공하는 영화를 블랙 코미디로 만들겠다"는 얘기다. 어떤 느낌이 드는가? '에이 설마'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많은 언론이 이 '사실'을 보도한다고 치자. 또 봉 감독이 TV인터뷰에서 나와 같은 말을 한다고 치자. 안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몇 가지 걱정과 의문은 피할 수 없다.
첫째, 무엇보다 외교문제로 비화할 수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블랙 코미디 영화'라 밝혔다. 그럼 중국이라는 권위주의 국가의 최고 수장에 대한 희화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시 주석이 그렇게 싫어 한다는 '곰돌이 푸'가 등장할 수도 있다. 게다가 러시아나 북한 등 중국과 우호적인 다른 나라들까지 거들 수 있다. 여기에 중국과 대만 문제에는 미국까지 끼어있지 않나. 자칫 상상하기 싫은 상황으로 비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 영화에 대한 외압도 걱정이 된다. 아무리 봐도 정부가 두 손 놓고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만일 정부가 봉 감독에게 촬영 중단을 요청한다면 어떻게 될까? 21세기 대한민국은 당당한 세계 문화중심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표현의 자유'를 보장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핵심 중 하나다. 자칫 문화계 반발을 살 수도 있다. 정부 입장이 난처할 것이다. 어쩌면 언론이나 지식인이 나서서 정부의 곤란한 입장을 대변할 지도 모른다.
셋째, 예술인으로서의 봉 감독이 갖는 '고집'과 '자존심'도 걱정이다. 정부와 언론, 심지어 지식인까지 나서서 "영화 제작을 중단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는데도 봉 감독이 '자존심'과 '고집'을 꺾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어떻게 될까? 국민 대부분은 봉 감독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영화로 인한 정치ㆍ외교적 마찰을 걱정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 '가상기사'는 영화 <위대한 독재자>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촬영기간 중 채플린이 처한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채플린이 '히틀러 영화'를 찍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과 언론은 우려했고 정부는 촬영중단의 압력을 가했다. 아직은 전쟁 전이었다. 영국과 미국의 정부 및 언론은 히틀러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히틀러와 파시즘에 동조적이었던 정치집단들은 협박도 마다 않았다. 채플린은 촬영 때부터 이미 '총체적 난국'에 빠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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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