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104) 재정건전성 유지 집념

오늘보다 잘사는 내일을 일구는 나라 전체 노력의 선봉에 선 기획원 수석 경제부처로서 국방과 교육 정책도 경제 논리 갖고 시급성 따져 숱한 불황과 경제 위기속 흔들리지 않은 건 국민이 보내준 신뢰 덕분

2022-11-29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경제기획원을 떼놓고 쓰루의 유산을 논할 수 없다. 그는 초기 세 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실무 책임자(기획조정관), 총괄 조정자(기획원 차관), 최고 책임자(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로 참여했다. 그가 기획원에 심어놓은 국가경제 비전 제시와 장기 계획 수립의 DNA는, 그가 떠난 후에도 반세기 가까이 경제기획원의 정책 사고를 이끌어가고 있다.

그것은 기획원이라는 부처의 특성과도 관련 있다. 인허가나 규제로 특정 경제활동을 관할하는 '현업' 부처가 아니어서 직접적 이해로부터 자유롭다. 따라서 객관적이고 종합적이며 장기적인 시각으로 나라경제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수석 경제부처로서의 기획원은, 모든 나라 살림에 철저한 경제 논리를 고집해왔다. 그 앞에서는 국방과 교육 등 비경제 부문도 왜 그들의 정책이 시급한지 경제 논리로 설명해야 했다.

경제 논리를 고집한 저변에는 재정 건전화에 대한 집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기획원에 깊게 뿌리내린 그 집념은 그 후 숱한 불황과 경제위기를 거치면서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 있는 데에는 대통령과 우리 사회가 '나라 살림 파수꾼'으로서 기획원의 역할을 존중 내지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재정 건전성을 유지, 강화할 수 있었던 핵심적 바탕이다.

그가 남긴 더 소중한 유산은 기획원 조직 안에 심어놓은 변혁을 주도하는 마인드이다. 1970년대 수출 주도 산업화, 1980년대 민간 주도 경제, 공정거래법 제정, 1990년대 개방화, 국제화, 1997년 외환위기 후의 금융, 노동, 재벌, 공공 4대 개혁 등 한국 경제의 주요한 절목마다 경제 구조의 근원적 전환을 발상하고 추진한 것은, 모두 기획원 조직 안의 '변혁의 DNA'가 작동한 결과였다.

90년대 이후 재정경제원, 기획재정부 등으로 조직의 흡수 통합이 있긴 했지만, 최고 최강 부처로서의 소명의식, 경제 논리 DNA, 나라 곳간 파수꾼, 아니 나라경제 지킴이로서 기획원의 역할은 아직도 살아 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잘사는 내일을 일구는 나라 전체 노력의 선봉에는 늘 기획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