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의 '반도체 굴기' 구체 행보

아버지 이건희의 '신경영 선언일'에 유럽 출장 나서 '큰 판' 모색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본사 찾아 직접 장비확보 주도 글로벌 파운드리 1위 대만 TSMC와 ' 진검 승부' 앞서 사전 포석 독일-프랑스 등도 방문해 5G협력과 완성차 배터리 합작도 추진

2022-06-07     이코노텔링 고현경기자
이재용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유럽 출장길에 올랐다. 김포공항에서 전세기편으로 유럽으로 출국한 이 부회장은 네덜란드와 독일, 프랑스 등 3개국을 방문해 반도체 장비·전기차용 배터리·5세대(5G) 이동통신 등에 특화된 전략적 파트너들을 만나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한다. 그동안 삼성이 예고한 대형 인수합병(M&A)이 이재용 부회장의 유럽 출장을 계기로 구체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재용 부회장은 구체적인 출장 일정과 인수합병(M&A) 계획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잘 다녀오겠습니다"라고만 언급했다. 이 부회장이 출국한 6월 7일은 부친인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독일에서 '신경영 선언'(1993년 6월 7일)을 한지 29주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전 세계에 나가 있는 임원들을 불러 모아 "극단적으로 말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며 대대적인 혁신을 주문했다. 이 프랑크푸르트 회의는 삼성이 질적 성장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전환점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유럽 출장 기간은 18일까지 12일간이다. 행선지로 네덜란드만 공개됐지만, 독일과 프랑스 등 인접 국가도 함께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있는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업체 ASML 본사를 찾아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수급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ASML은 반도체 미세공정에 필수적인 EUV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글로벌 업체다.

연간 생산 물량이 제한적인 EUV 노광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업체인 대만 TSMC와 2위 삼성전자 간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이 부회장이 시스템반도체 사업 강화를 위해 EUV 장비 확보에 직접 나선 것으로 관측된다. 이 부회장은 2020년 10월에도 ASML 본사를 찾아 피터 버닝크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한 상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부회장은 네덜란드 방문에서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의 회동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 3월 뤼터 총리와의 통화에서 반도체 분야의 협력을 제안했다.

이 부회장이 독일과 프랑스를 방문하는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그동안 '버라이즌' '디시 네트워크' 등 북미 지역 이동통신사로부터 대규모 5G 통신장비 수주를 이끈 이 부회장이 유럽 지역에서도 현지 이동통신사와 협력을 모색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올 초 삼성전자는 유럽 1위 이동통신사 '보다폰'과 협력해 유럽에서 첫 5G 장비를 개통했고, 이를 계기로 유럽 네트워크 장비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 출장에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을 담당하는 삼성SDI 최윤호 사장이 동행하는 점으로 볼 때 유럽 완성차 업체들과 삼성SDI 간의 협력 강화를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삼성SDI가 최근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와 미국 인디애나주에 25억달러(약 3조1000억원)를 투자해 전기차 배터리 합작사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는 유럽 지역에서도 완성차 업체와의 협력 강화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삼성이 예고한 대형 인수합병(M&A)이 이 부회장의 유럽 출장을 계기로 구체화할 가능성도 높다. 네덜란드에는 그동안 삼성의 유력 M&A 대상 후보로 꼽혀온 차량용 반도체 기업 NXP가 있고, 독일에는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차량용 반도체 기업 인피니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