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97)오원철의 청와대行

4대 핵공장 건설위한 외자도입 지지부진하자 박통의 처음이자 마지막 실망표시 사업 주도권 기획원서 박통 직할체제로 …오원철 자관보가 경제2수석에 임명돼 대통령과의 거리가 생기자 쓰루에 반감을 가졌던 인사들 '희소식' 열심히 퍼날라

2022-08-23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김학렬

쓰루가 매사에 미다스의 손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4대 핵공장 건설사업이 그랬다. 일본은 제5차 한일각료회담에서의 합의, 특히 '4대 핵공장 건설사업에 약 8000만 달러의 장기 저리차관을 제공한다'는 합의의 이행에 시간을 끌었다.

일본의 시간 끌기에 쓰루는 새로운 또는 추가적 차관 선으로 노르웨이, 스웨덴 등으로 눈을 돌려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조선산업 협력에는 긍정적이었지만 여타 4대 핵공장 사업 협력에는 소극적 반응 이상을 보이지 않았다.

한반도 주변의 안보가 날로 불안을 더해가는 가운데 11월 10일, 쓰루는 박통에게 15개월 넘게 벌인 4대 핵공장을 위한 외자 도입 교섭 현황을 보고했다. 제5차 한일각료회담을 통해 일본의 협력을 이끌어낸 것에 머무는 추진 성과는 안보불안에 초조해진 박통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쓰루의 '부진' 보고를 받고 청와대로 들어가던 박통은 김정렴 비서실장에게 그 실망을 토로했다. 쓰루에 대한 박통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실망 표시였다.

그날 오후 오원철 상공부 광공차관보는 김 실장의 주선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박통과 면담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4대 핵공장은 경제성이 의문시되는 군수산업이 아니라 경제성을 담보할 수 있는 민수산업으로 우선 키워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오 차관보는 그날로 경제 제2수석에 임명되었다. 그것으로 4대 핵공장 건설의 주도권은 경제기획원에서 청와대로 넘어갔고, 중화학공업화 정책도 '쓰루 주관' 정책에서 '박통직할' 사업이 되었다. 4대 핵공장 건설 주도권의 이관은 한국의 산업화가 경제 논리가 아닌 공학적 사고에 지배되는 시대로 접어드는 것을 상징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실망했다는 소식은 급속하게 권력 주변에 전해졌다. 쓰루의 언행에 당하거나 거침없는 그의 권한 행사에 피해를 보거나 권한이 줄어든 인사들은 그 '희소식'을 열심히 퍼 날랐다. 4대 핵공장 건설 주도권을 내려놓은 것은 각료 해임, 서재 털림에 이어 1971년 가을 부총리 쓰루의 권위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혔다.

"포항제철 사업이 장기영, 박충훈 두 부총리의 해임 사유였다면, 중화학공업 정책은…… 김학렬, 태완선 두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다."( 주태산, 『경제 못 살리면 감방 간대이: 한국의 경제부총리, 그 인물과 정책』, 중앙M&B,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