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장환의 스포츠 史說]제갈성렬의 입

김보름의 ' 왕따 질주 ' 오해 풀렸지만 만시지탄 캐스터가 흥분했는데 해설자마저 분위기 편승 전문가의 책임과 품격이 현장중계 품질도 높여

2022-02-23     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베이징

베이징 올림픽은 끝났으나 김보름 사태는 진행 중이다. 4년 전, 국민의 비난 대상이었던 김보름(29)의 '왕따 사건'이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제는 당시 중계진과 노선영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거꾸로 노선영의 욕설에 대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사과나 욕설 여부는 본질이 아니다.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이유를 알아야 한다. 다시는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1년 전, 김보름 문제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평창 올림픽 당시 팀 추월 8강전에서 김보름과 박지우가 일부러 속도를 높여 노선영을 따돌렸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닐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빙상연맹 조사 결과 이들의 랩(lap) 타임은 연습 때와 비슷했고, 보조를 맞춰 따라와야 할 노선영이 현격히 뒤처진 것이었다.

그런데 왜 김보름이 비난의 대상이 됐고, 6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청와대 청원을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을까. 발단은 SBS의 중계가 맞다. 당시 배성재 아나운서가 "마지막 선수의 기록으로 결정되는 종목 특성상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라며 노선영을 배려하지 않은 두 선수를 비난했고, 제갈성렬 해설자가 맞장구를 쳤다. 이렇게 되자 시청자들은 당연히 두 선수를 비난했고,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김보름이 노선영을 원망하는 듯한 뉘앙스를 보이자 모든 비난이 김보름에 쏠린 것이다. 김보름은 노선영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지만 이미 선입견이 생긴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4년 만에 사실이 밝혀지자 비난의 대상이 배성재 아나운서에게로 옮겨갔다. 배 아나운서도 책임이 있지만, 더 큰 책임은 제갈성렬 해설자가 져야 한다.

올림픽 중계를 맡은 캐스터들은 중계를 위해 여러 달을 준비한다. 종목별로 규칙을 공부하고, 다양한 자료도 찾는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캐스터가 모든 종목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전문가인 해설자가 필요한 이유다. 국가대표 선수와 지도자 출신인 제갈성렬 해설자가 "그게 아니다"라며 정확한 설명을 해줬어야 했다. 그러나 분위기에 편승해서 같이 흥분했고, 같이 비난했다. 시청자들로서는 그게 사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명백한 직무 유기이며 잘못이다.

그 결과 후배인 김보름은 4년간 고통 속에서 지내야 했고, 노선영 역시 피해자가 됐다. 선수단 분위기도 망가져서 이번 베이징 올림픽까지 영향을 미쳤다. 당시 김보름을 비난했던 국민 중 자책감을 가진 사람도 많다. 전문가가 자신의 역할만 제대로, 정확하게 했더라면 처음부터 이렇게 시끄러울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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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1986년 중앙일보 입사. 사회부-경제부 거쳐 93년 3월부터 체육부 기자 시작. 축구-야구-농구-배구 등 주요 종목 취재를 했으며 93년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98년 프랑스 월드컵,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한일 월드컵,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을 현장 취재했다. 중앙일보 체육부장 시절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으며Jtbc 초대 문화스포츠부장을 거쳐 2013년 중앙북스 상무로 퇴직했다. 현재 1인 출판사 'LiSa' 대표이며 저서로 부부에세이 '느림보 토끼와 함께 살기'와 소설 '파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