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91)'메가톤급 뉴스' 활용

1971년 대선 끝나자 '인플레 파도'…언론 설문에 응한 금통위원에 버럭 공공물가 인상 등 '나쁜 소식'은 실미도 준동사건 등 빅뉴스에 끼워 발표 뉴스 초점 흐리기 비꼬는 보도 잇따르는 등 '언론이 손 밖서 놀자' 초조감

2022-05-31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김학렬

선거 때가 되면 선거 인플레 심리가 준동하기 마련이다. 과연, 선거가 끝난 1971년 여름부터는 물가 상승세가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물가 상승에 불을 지핀 것은 정부(쓰루)였다. 선거가 끝나면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일들을 정부가 많이 벌인 것이다. 두 번에 걸친 대폭적인 달러 환율 인상(평가절하), 유가 인상 등 정부가 관리하는 소위 '공공물가'는 선거 후 봇물 터지듯 인상 러시를 탔다.

그런 '민감한' 때에 (쓰루가 물가나 경기 진단 등과 관련해 늘 신경질적으로 반응을 하는) 한국은행에서 사달이 벌어졌다. 금융통화 위원을 하고 있는 대학교수 한 사람이 정부의 유가 인상이 물가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냐에 관한 신문의 전문가 의견조사에 응한 것이다. 그의 응답은 쓰루를 폭발시켰다. '울고 싶을 때'에 뺨을 때려준 격이었다.

다음 날 기획원에서 개최된 미군 철수 등에 대한 관민 대책회의에서 쓰루가 "정부에 협조 안 하는 그 ○○, 사표 안 내면 금통위에 공문을 보내 실격시키겠다"며 펄펄 뛰었다. 회의에 참석했던 다른 장관들이나 경제계 원로들은 아연실색한 채 속수무책으로 그 험담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이 임명한 금통 위원을 기획원 장관이 목을 치겠다는 말은 곧 '관권 남용', '금통위 독립성 유린', '관권 우위 사고방식' 등 언론의 비난을 자초했으나, 누구도 그의 흥분을 가라앉히거나 과격한 언행을 자제시키지는 못했다.

정부가 통계로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물가 상승세가 뚜렷해져갔다. 덩달아 국제수지 적자도 심각해져갔다. 언론은 물가와 국제수지에 대한 우려의 기사를 즐겨 실었다. 쓰루는 공공물가 인상 등 '나쁜 소식'을 국민적 관심이 빅뉴스에 쏠려 있을 때에 슬쩍 끼어 전했다. 그렇다고 그의 뉴스 물타기가 언론의 눈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법파동, 남북적십자회담, 닉슨 조치, 8·23 난동(실미도 북파공작원 반란사건) 등 그야말로 10대 뉴스감이 마치 폭죽처럼 터져 나오는 틈을 이용한 김학렬 경제팀의 뉴스 흐리기 작전이 이제는 일가를 이룰 정도라고. …… 남북적(남북한의 적십자회)이 처음 대좌하는 역사적인 날 예정에도 없는 기자회견을 갖고 석유류, 석탄값 인상을 기습 발표하는가 하면, 그다음 날에도 역시 예정에 없는 기자회견을 갖고 한은 총재가 경제는 고도성장 중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물타기를 강행했다. 그뿐만 아니라 세제 개혁, 예산안 등 빅뉴스를 계속 풀어 불황과 물가고에 따른 비난의 방패막이로 삼는 절묘한 솜씨를 발휘하기도." 『매일경제』 1971년 8월 28일 자) 물가 상승과 언론 보도가 자신의 손 밖에서 놀기 시작하면서 그는 점점 초조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