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창업자 고 신격호 회장 '탄생 100주년'
일제강점기 단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빈손으로 껌과 초콜릿 등 과자류 사업 기반 다져 1967년 롯데제과 앞세워 모국에 진출해 10대그룹으로 일구는 등 두 나라서 경영 수완 롯데월드타워 1층에 있는 흉상의 뒷면에는 '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 '라는 문구 새겨져
작년 초 99세를 일기로 타계한 롯데 창업주 고(故) 신격호 회장이 3일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그는 일제 강점기인 1921년 11월 3일 경남 울산군 삼남면 둔기리(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에서 5남 1녀 중 첫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20세기 초반에서 21세기 초반에 걸쳐 거의 한 세기를 살다 간 그는 생애 중 70여 년을 기업인으로 살았다.
그는 20대 초반이던 1941년 단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갖은 고생 끝에 껌과 초콜릿 등 과자류 회사(일본 롯데)로 성공을 거두었다. 40대 중반이던 1967년 롯데제과를 앞세워 고국인 한국에 진출해 마침내 롯데를 한국 재계 열 손가락에 꼽히는 기업으로 키워냈다. 한·일 양국을 오가며 사업을 성공시킨 그를 두고 사람들은 곧잘 '대한 해협 경영자'라고 부른다.
롯데그룹(회장 신동빈·66)은 최근 창업자 고 신격호 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고 그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여러 가지 행사를 벌이고 있다. 1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고인의 흉상을 제막하고 기념관을 개관한 게 가장 눈에 띈다.
고인의 청동 흉상은 좌대 포함 185㎝ 높이로 롯데월드타워 1층에 위치한다. 흉상 뒷면에는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는 고인의 기업가 정신을 기리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흉상은 광화문 세종대왕상을 만든 조각가 김영원 씨가 제작했다.
'상전(象殿) 신격호 기념관'은 롯데월드타워 5층에 약 680㎡ 규모로 꾸며졌다. 기념관에서는 미디어 자료와 실물 사료를 통해 롯데의 역사와 고인의 일대기가 소개되고 고인의 창업 초기 집무실 모습을 재현했다.
생전의 낡은 구두와 돋보기, 펜과 수첩, 명함과 파이프 담뱃대, 롯데백화점 초기 구상도, 롯데월드타워 기록지 등도 선보인다. 고인의 평소 좌우명이었던 '거화취실(去華就實=화려함을 멀리하고 실리를 추구한다)'라는 글귀를 담은 액자도 걸려 있다.
신동빈 회장은 1일 흉상 제막 및 기념관 개관 기념사를 통해 "회장님은 대한민국이 부강해지고 국민이 잘 살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사회와 이웃에 도움이 되는 기업을 만들고자 노력했다"며 "새로운 롯데를 만들어가는 길에 회장님이 몸소 실천한 도전과 열정의 DNA는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롯데 측은 신 회장 탄생 100주년 당일인 3일 다양한 기념행사를 갖는다. 롯데벤처스는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 지원 프로젝트에서 뽑힌 13개사에 총 5억 원 상당의 지원금을 제공하는 행사를 연다.
롯데가 후원해온 한국유통학회는 이날 제3회 상전유통학술상 시상식을 갖고 유통정책과 산업발전에 공헌한 학자들에게 상금을 준다. 롯데장학재단은 코로나19 퇴치에 헌신해온 간호사 자녀 110명에게 총 1억2000만 원 상당의 나라 사랑 장학금을 수여한다. 3일 오후 7시부터는 롯데콘서트홀에서 고인의 꿈과 도전, 열정을 기리는 기념음악회도 열린다.
고 신격호 회장은 2017년 6월 24일 명예회장으로 퇴진할 때까지 한·일 양국을 오가며 무려 70여 년간 사업 일선을 지킨 불세출의 기업인이었다. 4가지 포인트로 나눠 영욕으로 점철됐던 그의 사업 행로를 살펴본다.
■ '대한 해협 경영자' 별칭 얻어= 그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경영에 나서 '대한 해협 경영자'란 별칭을 얻었다. 홀수 달에는 한국, 짝수 달에는 일본에 머물렀다. 재일 교포로 일본에서 먼저 사업을 일으킨 다음 고국인 한국에 들어와 대그룹을 다시 축성한 솜씨는 국내 어느 기업인도 흉내 내기 어려운 점이었다. 일본 여성과 두 번째 결혼도 했다. 첫 번째 결혼은 일본으로 가기 전 한국 여성과 했었다. 한국 체류가 많아지면서 미스 롯데 출신 여성과 사실혼 관계에 들어가 세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 '유통 거인'으로 한국 재계 5위 롯데 축성= 그에게도 공과(功過)는 있지만 60년대부터 본격화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 참여해 큰 족적을 남긴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기발한 마케팅 능력과 과감한 투자, 앞을 내다보는 사업 안목과 결단력, 치밀한 사업전개 능력으로 특히 유통 사업에서 솜씨를 보이며 '신격호 아성'을 일궈냈다. 1980년대 후반 "언제까지 외국 관광객에게 고궁만 보여줄 순 없다"며 고국 서울에 랜드 마크가 될 만한 마천루를 짓겠다고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123층짜리 잠실 롯데월드타워는 1987년 부지 매입 후 숱한 곡절 끝에 2009년 착공, 부지 매입 30년 만인 2017년 4월 준공됐다. 그는 한국 재계 5위 기업군을 축성하며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고 경제발전과 국민생활 향상에도 기여했다.
■ 막판의 뼈아픈 실책···후계 구도 정리 놓쳐= 막판에 후계 구도를 제대로 정리 못한 점은 그의 뼈아픈 실책이었다. 그는 견고한 롯데 아성의 카리스마 넘치는 성주(城主)였다.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자신의 위치가 두고두고 갈 줄 알았을까. 막판 치매가 오기 전에 일찍이 후계 구도를 명확히 했더라면 자신의 재산을 둘러싼 2세들 간의 골육상쟁(骨肉相爭) 만큼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2016년 여름 왕자의 난이 한창일 때 그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알츠하이머(치매) 진단을 받고 매일 약을 복용해 왔다는 보도가 터져 나왔다. 정기 치료를 받았으며, 2세들은 이를 알고 있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2017년 대법원이 그에 대한 한정후견인 지정을 확정해 그런 정황을 더욱 뒷받침했다.
■ 사실상 한국 재계 마지막 창업 1세대= 그는 한국 재계 굴지의 창업 1세대 중 사실상 마지막 기업인이었다. 삼성 이병철, 현대 정주영, 대우 김우중 등과 함께 롯데 신격호는 대표적인 창업 1세대 기업인에 속했다. 지난해 초 그의 타계로 재계 굴지의 창업 1세대 기업인은 사실상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