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역사갈피] 일본의 문명 이끈 '독서 열기'

메이지 유신 초기인 1870년에 등장한 인력거 속에서도 책 읽기 유행 스마트폰 나오기전엔 지하철서 신문과 책을 열독하며 일본도약 견인

2021-10-25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메이지

2000년대 초입만 해도 일본의 독서문화를 부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지하철이든 어디든 책을 펼쳐 들고 읽는 모습을 두고 하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 책이란 게 대부분 만화였다는 비아냥도 있었고, 지금이야 그쪽도 스마트폰에 몰입하는 게 다반사겠지만 말이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대목을 만났다. 일본 독서문화의 뿌리를 파고든 『독서국민의 탄생』(나가미네 시게토시 지음, 푸른역사)에서다.

온 나라가 '문명'의 도입에 혈안이 되다시피 했던 메이지 초기인 1870년 일본에 인력거가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이게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한 해 만에 도쿄부에서만 1만 대의 인력거가 굴러다녔고 5년 만인 메이지 8년(1875)에는 전국에 11만 대의 인력거가 운용되기에 이르렀다.

놀라운 것은 이 인력거에서 신문 등 글을 읽는 것이 개화기의 새로운 풍경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짐작하다시피 인력거의 승차감은 아주 나빴다. 목제 바퀴에 철테를 덧씌워 만들고 충격 완화장치란 것은 생각할 수도 없던 때, 게다가 제대로 포장이 안 된 도로를 오갔으니 요즘 지하철 좌석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덜컹거렸을 터다.

이런 악조건에서 때맞춰 등장한 신문을 주로 소리 내어 읽은 모양인데 아예 이런 '독서 애호가'들을 위해 신문을 비치해 놓은 인력거도 등장했다고 당시 요미우리 신문이 전한다. 물론 손님을 끌기 위한 한 방편이었겠지만 당시 인력거에서 글을 읽는 모습이 문명개화의 모습으로 인정되었던 세태를 엿볼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승객이 신문을 음독하노라면 이를 인력거꾼이 들으면서 신지식의 공유가 이뤄진 것이다. 당시 인력거를 끄는 이들은 몰락 사족에서 빈민가의 빈곤층까지, 다양한 이들이 하루벌이를 위해 흘러 들어가는 막다른 곳과 같은 직업이었단다. 그런데 '인력거 독서'가 번지면서 승객에게 적극적으로 신문을 읽어주기를 청하는 인력거꾼도 등장했고, 일 없는 인력거꾼이 막간을 이용해 독서를 하고 있는 광경이 신문 삽화의 소재가 될 정도에 이르렀다고 한다.

책에는 "근래 인력거꾼 중에는 가나가 달린 신문을 읽는 자가 많아 그 효능도 조금은 나타나는데, 예전에 비해 술값을 조르거나 요금을 더 달라고 요구하다가 싸우는 자도 드문 편이다"란 신문 기사도 소개되어 있다.

책이 지식과 재미를 얻는 거의 유일한 혹은 가장 큰 채널이었을 시절의 이야기이긴 하다. 그래도 이런 구절을 보면, 일본의 도약에는 이런 독서 문화가 한몫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독서의 의미랄까 효용을 새삼 짚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