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위기史(12)더 본드⑮역사와 영화

마르크 페로 감독 "영화는 기록문서들로부터 벗어나 있는 역사" 누구 시각으로 만들 것이냐에 따라 영화는 역사를 새로 재구성

2021-08-09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역사학에 대한 문학적 접근, 역사해석에 대한 문학비평적 방법론의 도입은, 완전하게는 아니라 해도, 상당 부분, 역사와 영화와의 관계에서도 등치(等値)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내러티브, 스토리, 플롯, 장르, 수사법······. 영화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문학비평의 개념 도입은 극히 자연스러웠다.

'카메라 만년필론(camera-stylo)'은 1940년대 말에, '작가주의 영화'의 개념은 1950년대 누벨 바그 운동에서 이미 그 특성이 도드라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화이트의 메타역사 이론은 우리에게 영화와 역사의 관계에 대한 그 어떤 이론보다 풍부한 이론적 논거를 제시해 준다. 필자가 보기에, 풍부한 상상력으로 무장된 그의 이론은 역사와 영화를 접목시키려 했던 로버트 A. 로젠스톤(Robert A. Rosentone)이나 마크 C. 칸즈(Mark C. Carnes), 폴 스미드(Paul Amith) 등의 분석적 접근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다.

'역사학계의 혁명가' 헤이든 화이트 덕에 우리는, 영화가 역사를 기술하거나 해석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어느 정도는 정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당연하게도, 역사의 해석자인 동시에 기록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초점은 이후의 문제인 '어떻게' 즉, 방법론에 쏠리게 된다. 영화는 역사를 어떻게 기술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역사가이자 영화감독인 마르크 페로(Marc Ferro)에게서 그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역사가로서 영화를 만들며 실제로 겪었던 영화와 역사의 관계에 대한 세 가지 방법론을 제시한다. 그의 분류가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참고할 점이 많다.

첫째, 시각에 대한 것으로, 그는 영화를 누구의 시각으로 만들 것이냐에 따라 역사를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관련 영화를 만들며 그는 영화를 철저히 알제리인의 시각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둘째는 '복원'과 '보존'의 의미에 강조점을 두는 영화다.

그는 자신의 영화 <독일은 어떻게 나치가 됐는가>를 예로 든다. 시간이 가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다양한 증언들을 토대로 말 그대로 독일이 나치화되고 있는 과정을 담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시각이나 해석을 일관되게 펼치는 방법이다. 그는 "식민지 피지배자들의 반란이나 미국의 흑인 문제 등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 때" 이 같은 방법론을 썼다고 말한다.

러시아역사가

'영화를 만드는 역사가' 페로의 얘기는 그밖에도 귀담아 들을 게 많다. 그는 1976년 쓴 글 '이미지와 제국'에서 "지난 몇 십 년 동안 글과 이미지 사이의 관계가 새롭게 역전됐다"며 "영화는 기록문서들로부터 벗어나 있는 역사"로 "반(反)역사(contre-histoire) 또는 비공식 역사의 형성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또한 "역사가는 지배계급에 편승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비판과 함께 "반면 영화는 예술로서 독립성을 지키려는 경향이 강하다"고도 했다. 그는 '영화로 영화를 쓰는 세 가지 방법' 외에도 '역사에 대한 영화적 시각의 분류'나 '미국 영화의 역사의식' 등 영화와 역사에 관련된 굵직굵직한 주제에 대한 글과 함께 자신의 견해를 선보였다.

'역사와 영화 간 관계'에 대한 그의 다양한 글에서 특히 필자의 눈을 끄는 주제가 있다. 영화와 역사의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영화에서 '보이는 것'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또는 '감춰진 것'을 잘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필요에 따라 여러 인문과학의 지식과 접근방식들을 원용하면서 영화(의 일부), 쇼트, 주제를 분석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영화와 직접 관련된 것과 관련되지 않은 것 – 작가, 제작사, 관객, 비평, 정치체제 – 사이의 관계를 분석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작품만이 아니라 그것이 나타내는 현실까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즉,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낸다! 중요한 말이다. 우리가 이 글에서 해 왔던, 그리고 지금부터 하려는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의 열두 번째 시리즈인 이번 글은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의 1918년 작 <더 본드(The Bond)>로 풀어나간다. 하지만 이번 열두 번째 시리즈 글에는, 채플린의 10분짜리 영화 '안'의 이야기보다 그 영화 '바깥'의 이야기가 훨씬 많다. 별 관계없어 보이는 제1차 세계대전, 연준, 그리고 채플린 사이를 잇는 감춰진 이야기들. 열두 번째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다음 글에서, 우리는 그 영화 '밖' 이야기 '안'에서,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역사를 보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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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박사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