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위기史(12)더 본드⑮역사와 영화
마르크 페로 감독 "영화는 기록문서들로부터 벗어나 있는 역사" 누구 시각으로 만들 것이냐에 따라 영화는 역사를 새로 재구성
역사학에 대한 문학적 접근, 역사해석에 대한 문학비평적 방법론의 도입은, 완전하게는 아니라 해도, 상당 부분, 역사와 영화와의 관계에서도 등치(等値)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내러티브, 스토리, 플롯, 장르, 수사법······. 영화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문학비평의 개념 도입은 극히 자연스러웠다.
'카메라 만년필론(camera-stylo)'은 1940년대 말에, '작가주의 영화'의 개념은 1950년대 누벨 바그 운동에서 이미 그 특성이 도드라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화이트의 메타역사 이론은 우리에게 영화와 역사의 관계에 대한 그 어떤 이론보다 풍부한 이론적 논거를 제시해 준다. 필자가 보기에, 풍부한 상상력으로 무장된 그의 이론은 역사와 영화를 접목시키려 했던 로버트 A. 로젠스톤(Robert A. Rosentone)이나 마크 C. 칸즈(Mark C. Carnes), 폴 스미드(Paul Amith) 등의 분석적 접근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다.
'역사학계의 혁명가' 헤이든 화이트 덕에 우리는, 영화가 역사를 기술하거나 해석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어느 정도는 정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당연하게도, 역사의 해석자인 동시에 기록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초점은 이후의 문제인 '어떻게' 즉, 방법론에 쏠리게 된다. 영화는 역사를 어떻게 기술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역사가이자 영화감독인 마르크 페로(Marc Ferro)에게서 그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역사가로서 영화를 만들며 실제로 겪었던 영화와 역사의 관계에 대한 세 가지 방법론을 제시한다. 그의 분류가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참고할 점이 많다.
첫째, 시각에 대한 것으로, 그는 영화를 누구의 시각으로 만들 것이냐에 따라 역사를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관련 영화를 만들며 그는 영화를 철저히 알제리인의 시각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둘째는 '복원'과 '보존'의 의미에 강조점을 두는 영화다.
그는 자신의 영화 <독일은 어떻게 나치가 됐는가>를 예로 든다. 시간이 가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다양한 증언들을 토대로 말 그대로 독일이 나치화되고 있는 과정을 담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시각이나 해석을 일관되게 펼치는 방법이다. 그는 "식민지 피지배자들의 반란이나 미국의 흑인 문제 등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 때" 이 같은 방법론을 썼다고 말한다.
'영화를 만드는 역사가' 페로의 얘기는 그밖에도 귀담아 들을 게 많다. 그는 1976년 쓴 글 '이미지와 제국'에서 "지난 몇 십 년 동안 글과 이미지 사이의 관계가 새롭게 역전됐다"며 "영화는 기록문서들로부터 벗어나 있는 역사"로 "반(反)역사(contre-histoire) 또는 비공식 역사의 형성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또한 "역사가는 지배계급에 편승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비판과 함께 "반면 영화는 예술로서 독립성을 지키려는 경향이 강하다"고도 했다. 그는 '영화로 영화를 쓰는 세 가지 방법' 외에도 '역사에 대한 영화적 시각의 분류'나 '미국 영화의 역사의식' 등 영화와 역사에 관련된 굵직굵직한 주제에 대한 글과 함께 자신의 견해를 선보였다.
'역사와 영화 간 관계'에 대한 그의 다양한 글에서 특히 필자의 눈을 끄는 주제가 있다. 영화와 역사의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영화에서 '보이는 것'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또는 '감춰진 것'을 잘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필요에 따라 여러 인문과학의 지식과 접근방식들을 원용하면서 영화(의 일부), 쇼트, 주제를 분석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영화와 직접 관련된 것과 관련되지 않은 것 – 작가, 제작사, 관객, 비평, 정치체제 – 사이의 관계를 분석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작품만이 아니라 그것이 나타내는 현실까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즉,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낸다! 중요한 말이다. 우리가 이 글에서 해 왔던, 그리고 지금부터 하려는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의 열두 번째 시리즈인 이번 글은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의 1918년 작 <더 본드(The Bond)>로 풀어나간다. 하지만 이번 열두 번째 시리즈 글에는, 채플린의 10분짜리 영화 '안'의 이야기보다 그 영화 '바깥'의 이야기가 훨씬 많다. 별 관계없어 보이는 제1차 세계대전, 연준, 그리고 채플린 사이를 잇는 감춰진 이야기들. 열두 번째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다음 글에서, 우리는 그 영화 '밖' 이야기 '안'에서,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역사를 보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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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박사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