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역사갈피] 피혐(避嫌)과 조선의 도덕 정치

사건과 관련 있다고 여겨지면 스스로 직을 내놓고 다른 사람에게 조사권 넘겨 더불어민주당,부동산 투기 의혹 소속 의원에 당 떠나게 한 조치에 평가 엇갈려 이성윤 서울고검장처럼 피고인의 신분임에도 영전해 당내 일각에선 부글 부글

2021-06-14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율곡

더불어민주당이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는 소속 의원 12명에 대해 탈당 권유, 출당 조치를 취해 화제다. "검찰의 수사로 불법성이 확인된 것도 아닌 만큼 지나친 것 아니냐",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민심 이반에 급하긴 급한 모양"이라는 둥 다양한 평가가 나온다.

이를 보면서 조선시대 피혐(避嫌)제도가 떠올랐다. 피혐이란 말 그대로는 혐의를 피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사건을 조사해야 하는 사람이 그 사건 혹은 사건 관계자와 관련이 있을 경우 미리 그 조사에서 손을 떼고 사건과 무관한 다른 사람이 조사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전에 이뤄지는 예방책이다.

일전에 소개했던 『역사책에 없는 조선사』(이상호 외 지음, 푸른역사)에는 이 피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선조 때 사헌부 관원을 지낸 권문해란 이의 '초간일기'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선조 16년 병조판서였던 율곡 이이가 왕에게 독대를 요청했다. 한데 조선시대에는 임금과 단 둘이 대면하는 독대는 간신들에게 악용될 우려가 있다 해서 엄금했던 일이었다. 이에 따라 사간원에서는 이이의 독대가 옳지 않다고 건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는데 문제는 사간원 언관 권극지의 입장이었다. 그는 이이가 독대 요청을 하는 자리에 있었는데 당시 그 자리에서 바로잡지 않았으니 이 안건에서 손을 떼겠다고 밝혔다. 바로 피혐이다.

조선시대에는 이 피혐제도가 엄격했으니, 사간원이나 사헌부 등에서 탄핵을 받은 관리는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조정에 출사하지 않고 대기하는 것이 관례였다. 스스로 자신의 임무를 정지해서 혐의가 없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한편 혐의 조사 과정에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조사의 공정성을 담보하려는 취지였다.

이에 따라 언관 권극지는 독대 요청을 묵과한 것은 "언관의 임무를 소홀히 한 혐의"가 있다고 스스로 인정해 물러나겠다고 자체 탄핵을 한 것이었다. 실상이야 어쨌든 조선시대는 유학자들이 관료가 되어 '도덕정치'를 구현하는 이상 국가를 지향했다. 그러기에 도덕적 흠결이 거론되거나 의심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도덕성이 증명될 때까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피혐'이란 강력한 장치가 가능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그 '피혐'까지 염두에 두고 이번 조치를 취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성윤 서울고검장처럼 피고인 신분임에도 영전하는 경우가 있으니 당을 떠나게 된 의원들 입장에선 하고 싶은 말이 많지 않을까. "피혐(被嫌·혐의를 받음)도 피혐 나름인가? 피혐(避嫌·혐의를 피함)도 사람 따라 하는 건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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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이성윤 서울고검장처럼 피고인 신분임에도 영전하는 경우가 있으니 당을 떠나게 된 의원들 입장에선 하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