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된 행남사 코스닥 상장폐지 비운

창업 4세승계과정 경영권 분쟁이어 2016년이래 적자행진 국내 1세대 생활 도자기 업체로 한국도자기와 한 때 쌍벽 전남 목포를 기반으로 1942년창업해 한때 세계시장 진출

2021-06-08     이코노텔링 성태원 편집위원
지난

사람처럼 기업에도 흥망성쇠(興亡盛衰)가 있다. 어느 경우든 흥(興)하는 것을 지켜보는 건 유쾌하지만 쇠(衰)하는 걸 지켜보는 건 민망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7일, 사력 80년을 자랑해온 국내 간판급 생활도자기업체 행남사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코스닥에서 상장폐지(이하 상폐)되는 비운을 맞았다. 1993년 상장했으니 28년 만의 일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8일 "지난 연말 거래소 측의 상폐 결정에 행남사 측이 법원에 금지소송을 내며 기사회생을 꾀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5개월 후인 지난 7일 상폐가 이뤄졌다"며 "행남사가 5월 26일 항고장을 냈지만 지난 5월 27일~6월 4일 일주일간 마지막 주식 거래인 정리매매까지 진행됐다"고 말했다.

거래소 측은 상폐 결정 이유로 "기업의 계속성 및 경영의 투명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상폐 기준에 해당한다"는 점을 들었다.

이로써 국내 1세대 생활도자기업체 선두주자로 그간 누렸던 명성에 치명상을 입게 됐다. 전남 목포를 기반으로 1942년 5월 설립돼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시장에까지 이름을 날렸던 이 회사의 앞날에 먹구름이 잔뜩 끼고 말았다.

물론 상폐가 된다고 해서 회사가 당장 없어지거나 주식이 휴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장 때 누렸던 혜택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무엇보다 기업 신뢰도와 인지도에 큰 손상을 입게 된다. 또 자금시장에서의 직접 자금조달이나 원활한 기업구조조정 등에서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행남사는 충북 청주를 기반으로 1943년 12월 설립된 한국도자기와 쌍벽을 이루며 수십 년 동안 국내외 생활도자기 시장의 강자로 군림했다. 반상기, 머그잔, 커피잔, 다기 세트, 주기 세트 등 가정용 생활도자기 생산·판매에 앞장서며 한국 도자기산업에 이정표를 세워 왔다.

1953년엔 국내 최초로 도자기 커피잔 세트 생산에 성공했다. 1963년엔 국내 최초로 홍콩에 국산 생활도자기를 수출했다. 88서울올림픽 때는 도자 식기류 공식 공급업체로 지정받는 영광도 누렸다.

하지만 2010년대 창업 4세 승계 과정(창업주는 故 김창훈)에서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데다 급격한 사업 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해 2016년 적자 전환 이래 6년째 적자경영이 이어졌다.

혼수 브랜드로 전성기를 누렸던 2000년대엔 연 매출 400억~500억 원 규모에 20억~30억 원대의 순익을 낼 정도로 잘 나갔다. 하지만 2020년 연결 재무제표 기준 매출 81억 원에 영업손실과 순손실이 각각 29억 원, 43억 원에 달할 정도로 내려앉았다. 그 결과 지난 6년간 주인이 다섯 번이나 바뀌면서 사업 부진 만회를 위해 본업이 아닌 영화, 공연, 파생 상품, 식품 등에 손댄 게 상처를 더욱 깊게 했다.

1인 가구 증가로 인한 반상기 등 가정용 수요 급감, 신혼부부들의 혼수 세트 외면 추세, 2010년대 이후 외산 브랜드 덴비(영국), 로얄코펜하겐(덴마크), 이딸라(핀란드) 등의 국내시장 점유율 확대(70~80% 추산) 등도 악재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