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역사갈피] 맥주가 청량음료라는 광고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에 버젓이 뻥친 광고 수두룩 강철보다 강한 고무신, 자양강장제라 내세운 초콜릿 신문에 실린 책 광고 10권 중 네 권,낯 뜨거운 포르노
인류 최초의 광고는 약 3,000년 전 이집트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학자마다 조금씩 의견이 다르긴 하지만 적어도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고(最古)의 광고는 잃어버린 노예를 찾아주면 금 한 냥을 주겠다는 현상금 광고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근대적 광고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역시 자본주의 상품경제가 도입된 이후일 것이다. 말하자면 개항 이후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란 이야기다. 이 시대의 생활, 역사를 다룬 책들을 읽다 보면 사람 사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은데 광고 역시 그렇다.
아니 오히려 미디어 윤리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만큼 지금보다 과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1920~28년 동아일보에 실린 책 광고 10권 중 네 권, 20권 중엔 열 권이 지금으로 보면 '빨간 책', 즉 포르노그래피였다.
『나체미인사진』이란 책은 "절세의 미인이 몸에 일사(一絲)도 부치 아니한 순진 나체사진이외다" 운운하는 카피와 함께 버젓이 1면에 실렸다.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미인의 사진이라면서 1,000부밖에 출판하지 않았으니 빨리들 주문하라고 뻔한 거짓말로 구매를 부추겼다. 게다가 "…본서 일책으로 누구든지 필요한 성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근대의 명저"라고 뻥을 쳤다.
근대화와 더불어 도시화와 자유연애 풍조가 드세지고, 나라 잃은 슬픔은 이런 데에서 출구를 쏟은 게 아닌가 짐작할 따름이다. 그래도 심하다 싶은 것은, 벌거벗은 여자가 벌거벗은 남자를 채찍질하는 삽화까지 곁들여 변태성욕을 다룬 책 『아귀도』 같은 책도 제도권 언론에 광고를 실은 점이다. 그야말로 에로그로(에로틱하고 그로테스크함)의 붐을 탄 광고였다.
이런 책들은 우편주문으로 일본에서 들여왔다는데 오죽했으면 동아일보에는 "…일인 서적상들의 광고는 가증하기 짝이 없다…우리의 형제여, 이런 광고에 속지 마라"란 독자투고가 실렸을까.
이런 사실은 근대의 신문광고를 탐색한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김태수 지음, 황소자리)란 매력적인 책에 나온다. 기생부터 포르노그래피까지 22개 품목별 광고를 분석했는데 이게 꽤 재미나다. 강철보다 내구성이 강하다는 고무신, 자양강장제라 내세운 초콜릿, 소 한 마리를 경품으로 내건 백화점, 술이 아니라 청량음료라고 우긴 맥주, 출세의 무기를 자처한 영어통신강좌 등 코믹하고 엽기적인 광고들을 통해 우리 근대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덕분이다.
---------------------------------------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