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장환의 스포츠史說] 중국 암표상의 '배포'

201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장서 韓日경기가 5회 진행되는데도 암표 값은 영 안 떨어져 암표상이 표 싹쓸이…"당장 손해봐도 값 안떨어진다고 믿어야 담엔 제 값(?) 받아" 태연

2020-10-20     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이코노텔링그래픽팀

미국 메이저리그는 이제 월드시리즈를 남겨놓고 있고, 한국 프로야구는 곧 포스트시즌이 시작된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관중 수를 제한해 만원 관중은 볼 수 없지만 매년 이맘때가 되면 야구장은 가을야구를 보려는 관중으로 가득 찼다. 암표상의 등장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런데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만난 암표상은 너무나 생소했다. 야구는 중국에서 비인기 종목이다. 야구장도 올림픽용으로 급조해서 사용하다가 올림픽 끝난 후에는 해체할 정도였다. 그런데 야구장 입장권이 다 팔렸다고 했다. 그럴 리가.

의문은 금방 풀렸다. 중국 암표상들이 싹쓸이를 한 것이다. 중국인들이 야구를 안 볼 텐데 야구장 암표가 과연 팔릴까?

한국과 일본의 예선전이 벌어진 날. 암표상들이 정가의 5배 정도로 암표를 팔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 관광객들만 관심 있는 경기인데 너무 심했다. 더구나 관중석도 텅텅 비어 있는데.

경기가 시작될 때까지 기다렸다. 암표 값은 보통 경기가 시작되면 정가 언저리까지 떨어진다. 안 팔리면 버려야 하므로 본전치기라도 하는 게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됐는데도 값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상하다. 5회가 됐는데도 그대로다.

기다리다 지친 교민이 물어봤다.

"표를 못 팔면 다 버려야 하는데 왜 값을 낮추지 않느냐?"

그 대답이 이러했다.

"차라리 버리는 게 낫다. 시간이 지나도 암표 값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인식해야 다음부터는 아예 처음부터 제 값(?)을 주고 산다."

이걸 대륙 기질이라고 봐야 하나, 영리한 계산법이라고 봐야 하나.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은 버린다'는 생각이 몸에 배어있는 것 같았다.

'중국이 공산주의를 하는 것과 한국이 자본주의를 하는 것이 세계 2대 불가사의'라는 말이 있다. 베이징의 암표 장수를 보면서 역시 중국인들의 장사 수완은 급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었다.

암표는 나쁘다. 정상의 경제 활동을 방해하고, 거래 질서를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암표상을 뿌리 뽑기 위한 여러 대책이 나온다.

하지만 '반가운 암표상'에 대한 기억도 있다. 만년 하위권이었던 쌍방울 레이더스가 1996년 시즌 승승장구를 하면서 2위까지 치솟았을 때 구단 직원이 흥분해서 외치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우리 구장에도 드디어 암표상이 등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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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1986년 중앙일보 입사. 사회부-경제부 거쳐 93년 3월부터 체육부 기자 시작. 축구-야구-농구-배구 등 주요 종목 취재를 했으며 93년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98년 프랑스 월드컵,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한일 월드컵,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을 현장 취재했다. 중앙일보 체육부장 시절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으며Jtbc 초대 문화스포츠부장을 거쳐 2013년 중앙북스 상무로 퇴직했다. 현재 1인 출판사 'LiSa' 대표이며 저서로 부부에세이 '느림보 토끼와 함께 살기'와 소설 '파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