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대권도전사㊦YS와 대립각 박태준 일본 유랑

문국현, 새 바람 일으켰으나 단명…안철수, 대권 좌절후 독일 머물며 ‘안철수신드롬’ 재점화 탐색

2019-03-11     성태원이코노텔링기자
포항제철(현

포스코 신화의 주역 박태준 회장도 정계에 진출해 대권 후보감 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으나 막상 대권 후보가 되지는 못했다. 포항제철 창업 사장, 회장, 명예회장을 두루 거치며 ‘철강왕’으로 불리었던 그는 정·관계 활동도 만만치 않게 했다. 국회의원 4차례, 민주정의당 대표(1988년), 자민련 총재(1997~2000년), 국무총리(32대, 2000년 1~5월) 등 비중 있는 자리를 많이 맡았다. 하지만 1992년 민자당의 14대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서 김영삼 후보 진영과 대립해 김영삼 정부(93~97년) 시절 내내 일본 등지를 유랑하며 고난의 길을 걸었다.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은 2007년 8월 회사에서 물러나 10월 창조한국당을 창당하고 같은 해 12월 치러진 17대 대선에 출마했다. 기업인 출신이었지만 비교적 참신한 이미지로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명박(당선·한나라당), 정동영(대통합민주신당), 권영길(민주노동당)에 이어 4위(5.8%)에 머물렀다. 이듬해 서울 은평 을구에 출마해 당선, 18대 의원생활을 했으나 그의 정치활동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박태준은

의사이자 성공한 벤처기업가였던 안철수씨는 2012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시절 정치에 입문했다. 국내 최초로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한 프로그래머이기도 했던 그는 당시 정치에 염증을 느낀 청년층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소위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는 불과 7년여의 짧은 기간 동안 국회의원 두 차례(19대, 20대),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국민의당 공동대표, 국민의당 당대표,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 등 비중 있는 역할을 도맡았다.

하지만 박근혜 탄핵 후 2017년 5월 9일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홍준표에 이어 3위(득표율 21.4%)에 머물러 대형 정치인으로선 한계를 보였다. 대선 후 우여곡절 끝에 바른미래당을 창당하고 2018년 6월 치러진 서울시장 선거에도 출마했다. 그 결과 역시 3위(득표율 19.55%)에 그쳐 큰 타격을 입었다. 서울시장 낙선 후 초빙 연구원 자격으로 독일 연수를 가 있으며 향후 정치활동 재개가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