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하 회장 " '매출 1조' 회사보다 '100억짜리 독립사업부 100개' 업체가 더 강하다"

40년간 한샘에 몸담고 '회장10년' 졸업 후 한샘 계열사 한샘이펙스의 '사주'로 제2 경영인생 대기업서 '부품'으로 일하기 싫어 '중소기업' 한샘서 매출2조시대 일군 '샐러리맨 신화' 표상 구직난 젊은이들에게 " 기업이 크든 작든 일단 취업한 후 사업 생리 눈뜨면 독립해 사업하라" "매출이 1000억 넘어서면서 임원 조차 ' 월급의 노예 '가 되가는 것을 지켜본 게 가장 아쉬워"

2020-08-03     이코노텔링 고윤희 기자

한샘은 다음달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그 반세기 중 40년을 한샘과 동고동략한 경영인이 있다. 최양하 한샘 고문이다. 지난해 10월 31일 꼭 10년간 지켜온 회장직을 내놓은 그의 경영행보는 곧 한샘의 성장 역사이기도 하다. 상장 500대기업 중 최장수 CEO(최고경영자)란 기록도 세웠다. 1979년 입사해 15년만에 대표이사직에 오른 그는 25년간 한샘을 이끌면서 매출 2조원시대를 열었고 부엌가구 업체를 종합 인테리어업체로 바꿔 놓았다.

한샘의

그는 한샘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한샘의 계열사인 한샘이펙스의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회사의 1대주주로 사실상 독립경영하며 또 다른 '샐러리맨 신화'의 여정에 나섰다. 자신이 갖고 있던 한샘의 주식과 한샘이펙스의 주식을 교환(스왑)한 결과다. 서울 강남에 있는 최양하 회장의 사무실에서 그가 일군 '경영 드라마'를 되짚었다.

최 회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 졸업직 후 대우자동차에 들어가 자동차 부품 생산라인 현장에서 일했다. 그런데 자신이 '부품' 역할에 지나지 않는 현실과 마주했다. 그는 "대기업에 들어가니까 다 좋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닙디다. 시스템으로 일을 하니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었고 그만큼 성취감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고민하던 차에 선배의 권유로 한샘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선배가 건자재회사라고 소개해 들어 갔는데 가서 보니 싱크대를 만드는 조그만 회사였다. 하지만 '과장' 타이틀 갖고도 자신이 주도적으로 일을 하는 공간이 넓었다고 한다. 몇 사람이 모여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체감했다. 매출이 쑥쑥 오르니 성취감도 컸다. 조직원 전체가 '할수 있다'는 정신아래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을 했다는 것이다. 한샘에 들어간 후 학교동기 모임에 나가 명함을 내미니까 회사를 알아보는 사람은 적었지만 뒤돌아보면 그 때가 즐거웠다고 한다.

최양하 회장은 "제가 한샘에서 25년간 대표이사직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매출액이 1000억원을 넘어가자 '대기업 병'에 걸려 임원조차 월급의 노예가 되는 모습을 지켜본 것"이라고 말했다. 조직원 누구나 신규 사업을 만들고 독립적인 의사결정 체제를 주면 더 멀리 더 빨리 뛸수 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규모의 경제가 장점은 있지요. 하지만 시대 흐름을 이끌어가는데는 한계가 분명히 보였어요. 그래서 우리 조직원들의 독립을 권장했는데 현실적인 벽에 부닥쳐 잘 되지 않았어요. 역량을 갖춘 눈에 띄는 사람들의 도전정신이 뒤 따라주질 않았어요. 하기야 저도 대표이사가 되기 직전에 몇차례 독립사업의 길이 보였으나 여러 이유로 나가지 못했어요. 하하."

최 회장은 매출 1조원의 회사보다 매출 100억원의 독립 사업부가 100개 있는 업체가 더 강한 회사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GE와 GM이 세계시장을 호령하다가 맥없이 주저 않는 모습을 예로 들면서 조직원에게 권한을 많이주고 평가를 냉정하게 하는 경영시스템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경영환경을 이겨내는 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요즘 젊은이의 고뇌를 화두로 인터뷰 말머리를 돌렸다. 그랬더니 최 회장은 "어떤 직장이든 취직은 해야죠.  거기서 세상물정을 익혀야 합니다.. 그 다음 목표는 그 회사에서 CEO(최고경영자)가 되거나 창업의 꿈을 키우라고 말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기업이 크든 작든 거기서 기업의 생리를 이해하고 기업의 사업 전개 방향을 가늠하는 판단력이 생기면 과감히 창업에 도전하는 젊은이가 많아야 나라경제의 활력에 불을 붙일수 있다는 것이다. 큰 기업에서 '부품'으로 일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실직하면 '인생의 경쟁력'은 일순 바닥으로 떨어진다는 사실도 감안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창업은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느냐"고 물었다. 최 회장은 "자신이 아는 분야에서 창업을 해도 사실 기업을 키우기가 쉽지 않지만 사업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기회도 보인다"며 "두려움을 무릎쓰고 가보면 길이 보일 때도 적잖다"고 강조했다.

그리곤 "젊어서 실패는 보약이 되지만 나이가 든 후 실패는 독약입니다. 그러니 젋을 때 창업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니면 회사에 내가 이런 사업할테니 독립사업부를 만들어 달라고 주장해야죠."

최 회장은 아들 둘이 있지만 자신이 운형하는 함샘이펙스에는 얼씬도 못 거리게 한다. 자신의 길은 자신이 개척하라며 독립창업의 길에 나선 아들들이 하는 일에 일절 간섭도 하지 않는다.

"밑바닥을 모르면 경영기초가 없는 겁니다. 아무리 운이 좋아도 그런 허술한 기초위에 세워진 집은 다 무너지게 돼 있어요. 자신이 터득한 경영노하우가 진짜 자신을 강하게 만들지요."

최 회장이 요즘 운영하는 한샘이펙스 이야기를 들었다. 이 회사는 ▲부엌가구와 기기및 상판▲오피스퍼니처(사무용가구)▲ 매트리스 등을 주로 생산하며 매출액 규모는 1500억원에 달한다. 주식지분의 절반이상을 최 회장이 갖고 있다. 그의 경영의욕은 지칠줄 몰랐다. "하루에 한 두시간 타는 차에게는 몇 천만원씩 투자하면서 하루에 3분의 1를 같이 보내는 침대 메트리스에는 그렇게 박하게 합니까.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면 고급 매트리스 시장은 아마 몰라보게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회사에 있을 때 종일 신세를 지는 의지도 인체공학을 접목한 '기능성 의자'로 급속히 변할 것이라며 한샘이펙스를 '토탈 라이프 서비스업체'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샐러리맨으로 한샘의 회장자리에 오른후 이젠 한샘 계열사의 '사주'(社主)가 된 그의 행보에 가구업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