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곤 탈주극은 '아내의 極秘작전'
악기 박스에 몸 숨겨 전세기로 빼내 첩보영화 방불 용병을 연주자로 위장시켜 저택 잠입 감시망 뚫어
(속보)지난해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평일인 일본 도쿄지법에선 카를로스 곤 전 르노 회장의 공판준비 절차가 진행됐다. 곤 전 회장은 변호인인 히로나카 준이치로 변호사와 함께 출석했다. 귀가하기 전 두 사람은 추가 협의를 위해 1월 7일 만나자는 약속도 했다.
곤 전 회장은 이날 저녁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도주 작전을 감행했다. 그를 감시해온 일본 사법당국이 도주 사실을 알아챈 것은 엿새 뒤인 12월 31일 새벽, 곤 전 회장이 이미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 도착한 뒤였다. 곤 전 회장의 여권을 관리해온 히로나카 변호사는 물론 자택 출입구를 24시간 폐쇄회로 TV로 감시하던 사법당국도 발칵 뒤집혔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곤 전 회장의 크리스마스 도주 작전은 이미 몇 주 전부터 시작됐다. 미국에 머물던 부인 캐롤의 지휘로 도주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사법당국의 감시망을 뚫기 위해 캐롤은 레바논 민병대 등 민간 용병업체와도 접촉한 것으로 보인다.
작전 실행일은 크리스마스로 정했다. 연말연시로 감시망이 느슨한데다 대부분 기관들이 연휴에 들어가 비상시 실시간 대응이 어렵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도쿄지법 공판준비 절차를 마치고 귀가한 곤 전 회장은 크리스마스 만찬을 가졌다. 행사 분위기를 돋운다며 연주단을 초청했다. 연주단과 함께 부인 캐롤이 섭외한 도주 조력자들이 연주자로 위장해 들어왔다. 공연을 마치고 귀가하는 연주단 손에는 커다란 악기 보관함이 들려 있었다. 그 안에 곤 전 회장이 숨어 있었다.
자택을 벗어난 뒤 모처에서 은신하던 곤 전 회장이 나타난 것은 12월 29일 오사카 간사이공항. 도쿄 나리타·하네다공항에 비해 감시가 허술할 것으로 예상해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신문은 곤 전 회장이 레바논 외교공관에 은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간사이공항에서 대기하던 곤 전 회장은 전세기를 타고 터키 이스탄불로 떠났다. 어떻게 전세기에 탈 수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전용기·전세기를 이용하더라도 일반 여행객과 같은 CIQ(관세·출입국심사·검역)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 등에서는 화물에 대해 X선 검사 등이 의무화되어 있지 않고, 기장의 판단에 따라 생략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에도 화물상자 등에 은신해 비행기에 탑승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경유지로 터키를 택한 것은 부인의 이복 오빠가 터키 정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12월 30일 이스탄불에 도착한 곤 전 회장은 부인과 재회한 뒤 함께 전세기를 타고 레바논 베이루트로 향했다.
이들을 태운 비행기가 베이루트에 도착한 것은 한국시간 31일 오전 6시 30분(현지시간 30일 밤). 이 시점을 전후해 월스트리트저널 등에서 곤 전 회장 도주 보도가 나왔고, 일본 사법당국도 인지했다. 같은 시각 곤 전 회장은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을 만나 신변보호 약속을 받았다.
일본 사법당국이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우왕좌왕하던 12월 31일 오전, 곤 전 회장은 미국 대변인을 통해 "나는 레바논에 있다"는 성명과 함께 도주 사실을 공개했다. 곧이어 레바논 정부는 곤 전 회장이 본인 명의 프랑스 여권을 사용해 합법적으로 입국했다고 밝혔다.
그가 어떻게 새 프랑스 여권을 구했는지도 미지수다. 아사히신문은 탈출 준비 과정에서부터 레바논 정부와 협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곤 전 회장이 도주함에 따라 4월로 예정된 공판 등 재판 일정은 무기한 연기가 불가피해졌다. 일본 정부에서 곤 전 회장을 소환하려 해도 레바논과는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돼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