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만든 사람들㉕캘빈 클라인㊤'美패션 황제'
옷차림에 센스있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재봉 솜씨'이은 타고난 디자이너 프랑스 디자인의 모방 생산에 환멸… 무명 카피 디자이너 접고 독립 결심 탈무드에 소개된 敎訓의 실천을 강조 하는 유대인 가정교육 창업에 영감
프랑스의 패션이 주름잡던 60~70년대 미국 패션업계의 '독립운동가'로 불리던 사람이 있었다. 한발 더 나아가 디자인 모드와 컨셉을 거꾸로 유럽으로 전파시켰다. 바로 캘빈 클라인이다.
그는 유대인 이민자 후손으로 철저히 유대인 가정 교육을 받았다. 미국, 특히 뉴욕은 유대인의 아성으로 변했다. 성공한 사람 대부분이 그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패밀리 애착 정신과 종교적인 교리는 남 다르다. 토라와 탈무드는 유대인의 정신적 금과옥조다.
좋은 교훈을 실천에 옮기도록 자녀들에게 특히 강조한다. 그 결과 100년이 지난 지금의 뉴욕과 미국은 그들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뉴욕을 만든 사람들 대부분이 유대인들이다. 캘빈 클라인은 1942년 맨해튼 북쪽, 브롱스에서 태어났다. 거기서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헝가리계 유대인이다.
브롱스는 뉴욕 5개의 구중에서 가장 쳐지는 동네다. 할렘의 북쪽 강 건너 중심에서 한 발짝 떨어진 곳으로 지금도 낡은 동네다.
그는 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의상에 관심이 많은 우아한 여성이었던 어머니와 숙련된 재봉사 출신으로 어린 시절 그에게 바느질을 가르쳐 주곤 했던 할머니의 피를 물려 받았다.뉴욕 유명 패션스쿨인 FIT에 입학한다. 그러나 졸업은 하지 못한 채, 패션 업계에 들어가 의류제조공장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한다.
1960년대초 그는 뉴욕 7번가의 의류 제조업이 밀집된 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가먼트 디스트릭트. 맨해튼 미드타운인 34~40번가와 6~9번가 애비뉴의 사이의 지역이다. 1900년대 전후에 로어 맨해튼이 번화가였을 당시, 이곳으로 도회지의 변방 의류 봉제 공장과 제조 중소규모 업자들이 모여들었다.
지금은 맨해튼의 핵심지역으로 변모해 의류 패션 공장들이 하나 둘 씩 떠나고 있다., 이 곳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임대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인근에 있는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계절마다 패션쇼를 열린다. 인근에 의류제조 공장과 디자이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서로 작품을 비교하면서 상부상조한 행사가 오늘날 국제적인 패션 이벤트로 발전 한 것이다.
캘빈이 의류 비즈니스에 합류한 60년대만해도 뉴욕의 패션은 파리를 따라가기 바빴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몇몇 디자이너들을 제외한 어패럴 제조업자들은 대개 파리 컬렉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솜씨 좋고 스케치 능력이 뛰어났던 클라인은 댄 밀스타인(Dan Millstein)이란 작은 회사에서 일했다, 그 역시 복제품 생산을 위해 파리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보고 그것을 베끼는 스케치 업무를 했다. 파리 패션의 노하우를 학습할 기회였지만 그는 내키지 않었다고 한다.
다른 디자이너가 만든 스타일을 모방하는 게 싫었다. 더욱이 무명 카피 디자이너로서의 삶에 만족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미 결혼했고 아이도 있는 가장이었다. 의류회사 직원인 봉급쟁이로 남을 것이냐 아니면 개인 비즈니스를 시작할 것이냐를 고민했다. 자신의 컬렉션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이 컸던 그는 어느날 사표를 쓰고 회사를 그만둔다. <하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