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역사갈피] 권력의 독선과 오만
자유당 시절 단편소설 '나는 너를 싫어한다'쓴 '저자' 공보처 장관 부부에게 혼쭐 부인을 모델로 그린 글이란 오해를 받고 끌려가 린치를 당하고 사과문 게재 소동 4.19는 정치적 이유로 일어났지만 권력층 이런 행태가 쌓인게 더 큰 원인 아닐까
역사책을 읽는 소소한 재미 중 하나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할 때다. 『대한민국 독서사』(천정환·정종현 지음, 서해문집)에서도 그랬다. '독서'를 중심으로 해방 70년을 돌아본 책인데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이 등장하는 1950년대를 다룬 대목에서였다.
완독 여부와 무관하게 소설 『자유부인』을 둘러싼 이야기는 어지간히 알려졌다. 1954년 『서울신문』에 연재할 당시부터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 책 출간 당일 초판이 매진되었던 최초의 현대적 의미의 베스트셀러.
대학교수와 그 부인의 일탈을 다뤘다 해서 이름난 서울대 교수가 "중공군 50만 명에 해당하는 조국의 적"이라 목소리를 높이는 등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문제작.
그러니 새삼스레 『자유부인』을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책에서 눈길을 끈 대목은 『자유부인』의 수난이 아니라 그에 앞서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작가와 작품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작가 김훈의 아버지이기도 한 소설가 김광주는 1952년 『자유세계』 창간호에 단편소설 「나는 너를 싫어한다」를 발표한 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곤욕을 치렀다. 작품은 '선전부 장관'의 부인이 성악가인 청년을 유혹한다는 구도로 상류층 여성의 행태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당시 이철원 공보처장(오늘날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부인이 자신을 모델로 한 작품이라 여긴 데서 벌어졌다.
그녀는 불만을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 그해 2월 17일 임시수도 부산의 한 다방에서 김광주를 만나 이를 따지면서 소설을 '취소'할 것을 요구했다. 김광주는 소설의 여주인공은 가상의 인물일 뿐이라 해명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더구나 이미 발행된 잡지에 실린 소설을 '취소'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분이 안 풀린 공보처장 부인은 김광주를 집으로 데려갔는데 거기서 공보처장 측근이 "머리털이 빠지고 다리에 타박상을 입을" 정도로 김광주를 폭행했다. 결국 김광주는 "소설 여주인공이 당신과 비슷한 점이 있는 것같이 일부에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본의는 아니었으나 사과한다"는 사과장을 써야 했다.
한데 이게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회적 논란이 되었는데 가관인 것은 공보처장의 후속조치였다. 그는 『자유세계』를 발매 금지, 압수 처분했을 뿐 아니라 각 신문사에 김광주가 겪은 수난을 보도하지 말라는 공문을 보냈으니 말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이승만 정부를 무너뜨린 4·19혁명은 정치적 이유로 일어났지만 실상은 권력층의 이런 행태가 쌓였던 것이 더 깊고 큰 원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권력의 독선과 오만이 어제오늘만의 일이겠느냐 한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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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