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96) 기자들과 화투놀이
불쑥 기자실에 들어와 고스톱은 세명밖에 못하니 '짓고땡'하자고 제안 패 하나 손에 숨겨 기자들 돈 긁어모아…"내가 노가다 시절 익힌 수법"
삼성이나 LG그룹 회장이 기자들과 격의 없이 어울렸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은 평소 모습 그대로 기자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형식을 싫어했던 만큼 어쩌면 기자들과 어울리는 게 편했을 수도 있다.
80년대 어느 날, 정 회장이 예고도 없이 현대그룹 기자실에 들렀다. 마침 기자들이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당시는 고스톱이 전국적으로 유행할 때였다. 고스톱을 치던 기자들이 정 회장이 불쑥 들어오자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정 회장이 들어오자마자 한 얘기가 기가 막혔다.
"이봐. 고스톱은 세 명밖에 못 하잖아. 나랑 짓고땡 하자. 내가 오야(두목, 계주를 뜻하는 일본어) 할 게."
그러더니 기자들 사이에 털썩 앉았다.
정 회장은 화투패를 아주 능숙하게 돌렸다. 정 회장 말대로 고스톱은 세 명이 하는 놀이지만, 짓고땡은 최대 8명까지 동시에 할 수 있는 놀이다.
기자들은 정 회장이 혹시 돈을 일부러 잃어주려고 그러나 생각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거의 돈을 긁다시피 했다. 기자들 돈을 따 먹는 그룹 회장님이라니.
다들 진짜 놀랐다.
"회장님, 실력이 보통 아니시네요."
그러자 정 회장이 씨익 웃더니 큼지막한 손바닥을 펴 보였다.
"요거 몰랐지?"
정 회장의 손바닥에 난초 한 장이 숨겨져 있었다. 손이 크니까 패를 돌리면서 한 장 숨긴 것이다. 남들은 5장 갖고 하는데 혼자 6장으로 하니 승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타짜라고 하기엔 초보 기술이지만 일종의 사기였다.
"이거 내가 노가다 시절 익힌 수법이야."
이럴 때 정 회장의 얼굴은 영락없는 개구쟁이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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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