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SK 70년' 최종건ㆍ최종현 語錄 유산 (70)최종현, 병마 속 '구국활동'

미국서 수술을 받던 날, 간호하던 아내의 급서 불구 '경제위기' 돌파 진두지휘 타계 직전 입원 권하는 주위 요청 뿌리치며"병원 갇혀 마지막 맞고 싶지 않다"

2026-01-21     특별기획팀

최종현이 폐암 발병을 알게 된 것은 1997년 5월이었다. 마른기침이 심한 모습을 걱정한 의사의 권유로 정밀 검사를 받고 암 덩어리를 발견했다.

얼마 후 그에게는 폐암보다 더 큰 불행이 찾아왔다. 6월 미국에서 수술을 받던 날, 긴장 속에서 간호하던 아내 박계희 여사가 심장마비로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다. 큰 충격이 이어졌지만, 그는 머물러 있을수 없었다.

국가는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는 위기 상황이었고, 그에게는 SK그룹을 지키고 한국 경제를 구해야 한다는 굳은 사명이 남아 있었다.

최종현은 1997년 7월 4일 수술 후 요양 중인 미국에서 그룹 업무 보고를 받고 "경제가 어려울수록 당초 계획대로 투자 사업을 집행하라."라고 독려했다.

8월에는 1994년 이후 그가 운영해 오던 '경제학 한국화 모임'의 경제학자들을 미국에 초청해 토론하기도 했다. 9월 16일 귀국 후에는 곧바로 전경련 회장단 회의를 주재해 "기업이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금리를 국제 수준인 연 5% 선으로 낮춰야 하며, 이를 위해 국내 금융시장을 이른 시일 내에 개방해야 한다."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주변에서 건강을 걱정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과 뜨거운 열정이 남아 있었고 시간은 한없이 부족했다.

최종현은 평생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 나라가 1인당 국내 총생산(GDP) 6만 달러 이상 가는 초일류 선진국으로 성장하는 것이었다.

비록 그 꿈을 생전에 볼 순 없을지언청 그는 적어도 한국의 대표적 기업인으로 지난 30년간 보고 느낀 경험을 토대로 대한민국이 1등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고유한 기업 성장 모델을 만들고자 했다.

최종현은 IMF 외환위기가 발생한 이후 한국 경제의 회생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1998년 1월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만나 재계 총수 간의 '대기업 구조조정 5대 과제'를 합의한 후 구조조정 작업을 추진했다.

그에게는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일보다 국가 경제 위기 극복이 더욱 중요했다. 타계 직전 최종현은 입원을 권하는 주위의 요청을 모두 물리치며,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결코 오래 사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병원에 갇혀 꼼짝 못 하다가 마지막을 맞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