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95) 문화일보 창간
회장단 자리에 초청한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 기업문화 중요성 강조 그룹 홍보실 이름을 문화실로 바꾸고 조직도 바꾸는 등 문화DNA심기 1990년 8월,문화실이 주축이 된 현대문화신문사 설립, 신문창간 나서
정 회장이 문화를 사랑하고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1990년에 정부 조직에서 문화부가 독립하고, 초대 문화부 장관 에 이어령 장관이 취임했다. 정 회장은 당장 이어령 장관을 초청 해서 회장단과의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는 정세영 회장, 이춘림 회장, 이명박 회장, 이현태 사장 등 현대의 주요 인사 7~8명이 참석했다.
북악스카이웨이 호텔에서 오후 2시에 시작된 대화가 밤 10시까지 이어졌다. 이어령 장관이 워낙 열변을 쏟기도 했으나 현대 회장단의 궁금증도 그만큼 많았다. 이 장관은 기업문화가 왜 중요하고, 필요한지 역설했다.
정 회장은 이어령 장관을 통해 기업문화에 대한 확실한 통찰력을 얻은 것 같았다. 당장 그룹 홍보실의 이름을 문화실로 바꾸고 조직도 바꿨다. 왜 현대그룹만 홍보실이 아니라 문화실이었는지란 의문이 여기에서 풀린다.
정 회장이 신문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예술인들과도 교류가 많았고 만나는 분야도 넓었다. 정 회장은 예술인들과는 얘기가 통한다고 말하곤 했다.
정 회장이 막연하게나마 신문을 창간하고 싶다고 생각한 시점이 89년 하반기라고 측근들은 기억한다. 그런 막연했던 생각이 이어령 장관을 통해 확고해진 것 같다.
정 회장의 신문 창간 움직임이 빨라졌다. 90년 8월, 현대그룹 문화실이 주축이 된 현대문화신문사를 설립했다. 신문사 창간의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91년 11월, 드디어 석간 문화일보가 창간됐다. 『문화일보』라는 이름도 정 회장이 직접 지었다. '문화가 중요하다'라는 지론에 따른 것이다. 문화일보의 목표도 '올바른 문화가치 창달'이었다.
회장의 뜻에 따라 문화일보는 기존 신문과 달리 파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1면이 정치 위주였던 기존 신문과 달리 1면에 문화와 사회, 경제 등 다양한 기사가 올라왔다.
가장 파격적인 부분은 문화부였다. 문화일보답게 그냥 문화부가 아니었다. 종합문화부, 학술문화부, 과학문화부, 생활문화부, 연예문화부, 해외문화부, 미디어부 등 세분화해서 문화부만 7개였다.
당시 통일국민당 창당과 대선 출마 등 정치적인 행보와 맞물려 정치적인 목적으로 문화일보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시기적으로도 맞물려 있고, 실제로 문화일보가 국민당 홍보와 정주영 대선후보의 홍보에 앞장섰으니 그 소문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의 신문 창간 아이디어는 정치 행보 이전에 생겼고, 이어령 장관 초청 이후 속도를 낸 점으로 봤을 때 정치적인 목적이 먼저는 아닌 것 같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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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