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역사갈피] '새세대 육영회'의 역할?

1983년 대구 디스코홀 화재 참사로 25명 숨진 후 사고 배경으로 '결손 가정' 비행도 꼽혀 복지시설의 여고생들을 비롯해 생산직 미혼여성 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합숙 교육' 시켜 희생자에 책임 묻는 일은 이태원 할로윈참사에도 이어지는 등 '야만의 시대' 끝나지 않아

2026-01-19     김성희 이코노텔링 편집고문

최근 선보인 『분단과 전쟁』(정용욱 외 16인 지음, 푸른역사)이란 책이 있다. 『점령과 전쟁』과 더불어 '오늘의 한국 현대사' 시리즈를 이룬다.

두 책에는, 제목 그대로 해방 직후부터 5공까지, 아직 '역사'라기엔 너무 일러 우리가 잊고 있던 흥미로운 사실(史實)이 여럿 나온다.

이를테면 여운형이 전쟁을 막기 위해 측근들을 월북시켜 북한군에 복무케 했다든가, '한국군의 아버지'라 추앙받는 미국 밴플리트 장군이 퇴역 후 이 땅에서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벌였는지 등등. 그중 「'5공의 어머니', 전두환 정권의 영부인 정치와 새세대 육영회」란 글 중 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1983년 4월, 대구 시내 디스코홀에서 화재가 나 25명이 숨지고 70명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터졌다. 당일 오후에 국무총리가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을 넘어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소방청이 긴급회의를 열어 도쿄 시내 79여 개의 디스코홀을 일제 점검했을 만큼 국제적 이목을 끈 대형 참사였다. 문제는 수습과정이었다.

사상자들의 절반이 미성년자라는 점에 더해 19세 여성 사망자에게서 가명을 사용한 3개 병원의 산부인과 진찰권이 나왔다는 소식이 사고의 성격을 바꾸었다.

이제 시설이나 안전 매뉴얼 미비가 아니라 청소년들의 불량한 행실, 즉 '청소년 탈선'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러면서 자녀를 단속하지 못한 가정의 책임이 집중 조명되었다. 대통령까지 "청소년 문제는 일차적으로 부모에게 책임이 있다"고 한마디 얹으며 아버지의 역할을 강조했다. 문교부는 한술 더 떴다.

학생의 비행을 보도하는 기사에 학교 이름 대신 집 주소와 학부모 이름을 써서 개별 가정의 책임을 명시하도록 지시했다. 대부분 유족들이 여론에 떠밀려 "자식을 잘못 가르쳐 비명횡사케 한 죄로 얼굴마저 들 수 없는데 피해보상금까지 받을 수 있겠느냐"라는 태도여서 피해배상이 쉽게 끝났을 정도였다.

이렇게 돌아가면서 이른바 '정상'가정과 결손가정이 대비되고 '부권(父權)'이 유난스레 강조되었다. 경찰 측은 1983년 1분기에 일어난 사건을 통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아버지 없이 어머니만 있는 집의 자녀가 반대로 어머니 없이 아버지만 있는 집의 자녀보다 4배 이상 범죄를 더 저질렀다는 경찰 측 발표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이런 흐름을 타고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가 주도하던 새세대 육영회는 1984년 11월 서울 송파구 장지동에 '새세대생활관'을 개관했다. 복지시설의 여고생들이 18세가 되어 시설을 떠나기 전에 '올바른 가정관'을 심어주기 위한 "미래의 어머니 전당"이었다. 점차 실업계 여고생, 생산직 미혼 여성 노동자 등으로 대상을 늘려가며 총 10만여 명에게 3박 4일간의 합숙교육을 실시했다.

희생자에게 책임을 묻는 사태는 과거의 일만이 아니다. 이후의 세월호 사건이나 이태원 할로윈 참사 등을 두고 온갖 음모론과 막말이 오갔음을 떠올리면 이 땅에서 '야만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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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