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51) 패션, 아직 인간의 것인가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음 시즌 인기 스타일, 색상, 실루엣을 예측 과거 데이터 기반으로 추천해 새롭고 독특한 취향은 줄고,'익숙한 선택' 강화 AI가 옆자리 앉아 있는 시대에도, 패션은 결국 기술이 아니라 나의 판단 문제

2025-12-30     송명견(동덕여대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패션과 인공지능(AI)의 결합은 이제 현실이다. 디자인부터 생산, 판매, 소비에 이르기까지 AI는 이미 패션의 거의 모든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은 단순히 기술의 유무가 아니라 '내가 진짜로 이것을 선택하고 있는가?'이다.

현재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음 시즌 인기 스타일, 색상, 실루엣을 예측한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나의 취향을 분석해 맞춤 추천을 해준다. 우리는 AI가 정리한 '선택지'를 보고 클릭하고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 과정에서 고른다기보다 받아들이는 느낌이 더 강해진다.

AI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옷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 '좋다' 또는 '아니다'라고 느끼는 순간의 판단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데이터가 추천한 옷이지만, 그 옷을 입었을 때 드는 감정이나 낯섦이나 어색함, 설명하기 어려운 끌림 같은 것은 AI가 대신할 수 없다. 결국 패션에서 AI는 도구이자 동반자일 뿐 창작자는 아니라는 뜻이다.

소비 현장은 이미 크게 변했다. 우리는 AI가 추천한 상품들 속에서 선택한다. 검색이나 비교보다 '승인 버튼'을 누르는 행동이 반복된다. 가격 비교는 AI가 알아서 해주고, 할인 타이밍도 알려준다. 그만큼 발품을 팔 필요가 없고, 손해 볼 걱정도 줄었다. 이런 편리함 덕분에 우리네 생활은 편해졌지만 동시에 선택의 감각은 점점 희미해진다.

이 같은 변화는 우리의 소비 습관과 취향에도 영향을 미친다. 첫째, 우리는 점점 '선택자'보다 '수락자'가 되어가고 있다. AI가 무엇을 살지 미리 정리해주고, 우리는 승인 버튼만 누른다. 문제는, 선택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둘째, 취향은 개인화되지만 동시에 평준화된다. AI는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추천하기 때문에 새롭고 독특한 취향은 줄고, 익숙한 선택이 강화된다. 우리는 이를 '나답다'고 느낄 수 있지만, 사실은 알고리즘(입력<input>을 받아 정해진 순서에 따라 명령을 실행하고 유일한 출력<output>을 도출하는 과정)이 먼저 안전하다고 판단한 선택일 수 있다.

셋째, 가격은 투명하지만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 AI는 개인의 구매력과 충성도를 분석해 가격을 달리 제안한다. 싸게 샀는지 보다는 공정하게 샀는지 알기 어렵다. AI는 소비자의 구매 이력과 이용 습관을 바탕으로 이 수준의 가격을 부담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때문에 같은 상품이라도 누군가는 더 비싸게 누군가는 더 싸게 접한다. 예컨대 한동안 구매하지 않은 소비자에게는 할인가격이, 자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는 정가가가 먼저 제시된다. 아! 나도 쿠폰을 못 받은 경험이 있나요?

넷째, AI는 생각을 덜어준다. 그만큼 편리함에 대한 중독이 생기고, 스스로 결정하는 힘은 약해진다.

다섯째, 우리의 얼굴은 점점 사라진다. AI에게 소비자는 사람이 아니라 소비 행동과 확률로 환원되는 패턴일 뿐이다. 망설임, 윤리적 고민, 설명되지 않는 감정은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다. 소비는 더 정확하지만, 덜 인간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션의 주체는 아직 바뀌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는 AI가 추천한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선다. 그 순간 드는 감정, 어색함, 끌림은 숫자와 알고리즘이 대신할 수 없다. 패션은 바로 그 지점에서 바로 인간의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AI를 거부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AI가 선택을 도와줄 수는 있어도, 취향까지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바로 이 점이 패션산업 현장에서나 소비자 입장에서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패션은 앞으로 보다 효율적이고 정교해질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입을 것인가, 어떤 스타일이 나를 표현할 것인가는 여전히 인간의 판단과 태도에 달려 있다. AI가 옆자리에 앉아 있는 시대에도, 패션은 기술이 아니라 나의 선택 문제다.

2026년을 앞둔 지금,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AI가 골라준 옷을 입은 이 순간에도, 과연 나는 여전히 "내가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