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의 취재여록 ㉚ 석유로 읽는 미국 역사 (9) 관광 핫스팟이 될 알래스카

북극권 온난화로 접근성이 좋아져 지난해 한국인 1만 5,800명 현지 찾아 1970년대 송유관이 건설되면서 지역 경제 살아나고 공항과 도로도 확충 여름 들판과 계곡 분홍빛으로 물들인 파이어위드와 연어 귀향 행렬 장관 쓰레기 줍고 야생동물 삶에 간섭 않는 등 기후변화시대 여행윤리 준수를

2025-12-16     이코노텔링 김수종 편집고문(전 한국일보 주필)

한국인은 이제 해외여행에서 부자나라 국민의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2024년 한 해 동안 해외 여행을 경험한 사람이 무려 2,860만 명입니다. 인구의 절반이 1년 안에 해외를 다녀온 셈입니다. 이들이 해외에서 지출한 관광비용도 약 25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한국 관광객의 행선지에는 그만큼의 경제적 화기가 더해지는 시대입니다.

그중 170만 명이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한국은 미국을 찾는 해외 관광객 규모에서 7위권 국가라고 합니다. 미국관광청이 한국을 중요한 시장으로 보고 꾸준히 방한 홍보 활동을 펼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알래스카는 새롭게 존재감을 키워온 여행지입니다. 2024년에는 한국인 1만 5,800명이 알래스카를 찾았고, 한국은 알래스카 입장에서 6번째로 큰 해외 관광시장입니다. 알래스카 관광 당국은 2029년까지 한국인 방문객이 지금보다 92%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북극권 온난화로 접근성이 커지고, 한국 기업들의 에너지 개발 참여 등 경제적·정서적 연결이 커지고 있는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석유가 만든 관광 대중화의 길

사실 알래스카는 오래전부터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었습니다. 미국인에게도 쉽게 갈 수 없는 변방의 땅이었습니다. 알래스카를 찾아가는 여행객은 극지방생태 탐험과 에스키모 문화등 인류학적 호기심으로 찾아가는 특수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68년 푸르도베이 대형 유전이 발견되고, 1970년대 알래스카 송유관이 건설되면서 지역 경제가 활기를 띠었고 공항과 도로 같은 인프라가 확충되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알래스카가 미국인의 일반 관광지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석유 자원이 알래스카 여행의 문을 열어준 셈입니다.

1980년대 한국인의 해외여행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 취재여행으로 여름과 겨울 두 번 알래스카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니 필자는 행운의 여행객이었습니다. 그때는 취재부담이 컸기 때문에 알래스카의 풍광을 즐길 여유가 별로 없었습니다. 알래스카 관광의 하일라이트는 크루즈를 타고 선상에서 거대한 빙하의 얼음절벽이 붕괴하며 바다로 무너져내릴 때 굉음과 함께 자연의 장엄함을 느끼는 것인데, 형무소 건설현장을 취재하러 스워드 항구에서 산자락에 걸린 빙하를 잠시 보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취재 중 이동하며 보았던 은빛 자작나무 숲과 짙루른 침엽수림의 선명한 대비, 여름의 들판과 계곡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파이어위드(fire-weed)의 화려함, 작은 하천으로 거슬러올라가는 연어떼의 귀향 행렬 등, 알래스카의 이미지는 잔잔한 감동의 조각으로 남아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그 기억은 일종의 향수(鄕愁)가 되고, 취재도 결국 또 하나의 훌률한 여행의 방법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끄러운 보신 여행의 흔적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1980년대 한국에서는 녹용이 귀한 보신재로 인식되며 수요가 폭발했습니다. 녹용 공급지 중 하나가 바로 얼음과 순록의 땅 알래스카였습니다. 여름이 되어 사슴 뿔이 돋아나는 시기, 한국 녹용장수들이 비행기를 대절해서 원주민들의 마을로 고기를 운반해주고 에스키모인들이 관심이 없었던 뿔을 한국 상인들이 거래하면서 녹용이 국내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알래스카의 사냥규정에도 맞지 않고, 녹용의 국내반입은 밀수행위였습니다.

단순한 녹용거래를 넘는 몬도가네식 보신광광 행위가 있었다고 필자가 만났던 알래스카 교포가 전해줬습니다. 사슴을 사냥한 직후 아직 살아 숨쉬는 사슴의 뿔을 자를 때 쏟아지는 피를 입으로 받아먹는 행위는 사슴사냥을 한 에스키모 원주민들에게도 충격을 안겼다고 합니다. 여행의 이름으로 포장된 이런 행위는 관광과 야만은 한 끗 차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부끄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지구를 배려하는 여행

자연을 정복하거나 소비하는 태도가 아니라, 그 자연 속에 안기는 마음으로 바라볼 때, 알래스카는 더욱 깊이 다가올 것입니다. 오늘의 알래스카는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라 지구의 비상벨이 울리는 기후위기의 현장입니다.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장관이 아름답게만 보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알래스카 여행객은 한 번쯤 질문해야 합니다.

"이 장관이 과연 언제까지 가능할까요? 우리의 여행은 이 자연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있을까요?"

기후변화 시대에 필요한 여행 윤리는 명확합니다.

쓰레기를 남기지 않고

야생동물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지역사회에 지속 가능한 이익을 주고

탄소배출을 줄이는 여행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알래스카를 찾는 한국 여행객 각자가 그 아름다움을 지켜내는 연대의 발걸음을 남겨주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알래스카는 앞으로도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여행지로 남을 것입니다.

□편집자주: 석유로 읽는 미국역사 알래스카 편을 마치고 다음에는 '캘리포니아 이야기' 시리즈를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