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태 트렌드 트레킹] (158) 고릴라를 보셨나요?

우리 뇌는 한 곳에만 집중하면 '다른 것'은 아예 인식하지 못해 비즈니스 세계도 마찬가지 … 기존 사고 틀서만 작동하면 위험 노키아와 TV방송사가 애플과 넷플릭스에 밀린 것도 같은 이유

2025-12-12     김용태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몇 년 전, 심리학계를 뒤흔든 실험 영상이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The Invisible Gorilla)' 실험이죠. 내용은 간단합니다. 하얀 티셔츠 팀과 검은 티셔츠 팀이 농구공을 주고받고, 관찰자들에게는 "하얀 티셔츠 팀이 몇 번 패스하는지 세어보라"는 과제가 주어집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숫자를 셉니다. 13번? 14번? 15번? 그런데 약 15초 지났을 때 질문이 나옵니다.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나요?" 대부분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영상을 다시 돌려보면 충격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커다란 고릴라 인형을 입은 사람이 화면 중앙을 유유히 걸어가는 겁니다. 카메라를 쳐다보기도 하고, 가슴을 팡팡 치기도 하면서요. 무려 9초 동안 화면에 있었는데, 관찰자의 절반 이상이 고릴라를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패스 횟수를 세는 데 집중하느라 다른 것은 아예 인식하지 못한 겁니다.

뇌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정보를 자동으로 필터링해버린 거죠.

비즈니스 세계도 똑같습니다. 2000년대 초반, 노키아는 세계 휴대폰 시장의 40%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명확했죠. "경쟁사보다 더 나은 폰을 만들자", "통화 품질을 개선하자", "배터리를 더 오래가게 하자". 노키아는 열심히 패스 횟수를 세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스티브 잡스가 고릴라처럼 등장했습니다. 2007년 아이폰을 들고 말이죠.

넷플릭스도 고릴라였습니다. 2010년대 초반, 방송사들은 시청률 경쟁에 여념이 없었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프로그램을 볼까?" 그 사이 넷플릭스가 고릴라로 입장했습니다.

넷플릭스는 방송사가 아닙니다. 데이터 회사이자 추천 알고리즘 회사였죠. 시청률이라는 평균값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이라는 변수에 집중했습니다. 전통 방송사들이 "황금시간대에 뭘 틀까"를 고민하는 동안, 넷플릭스는 "각자의 황금시간대"를 만들어냈습니다.

패턴이 보이시나요? 고릴라를 못 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명확합니다. 기존 틀 안에서 질문하고, 기존 지표로 측정하고, 기존 게임의 룰을 개선하는 데만 집중한다는 것이죠. 이건 패스 횟수를 세는 것과 같습니다. 중요해 보이지만, 정작 게임 체인저는 보지 못하게 만들죠. 지금 지나가고 있는 게임체인저는 AI입니다.

당신이 지금 세고 있는 숫자는 무엇인가요? 그 숫자 때문에 놓치고 있는 고릴라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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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김용태 마케팅연구소 대표)= 방송과 온라인 그리고 기업 현장에서 마케팅과 경영을 주제로 한 깊이 있는 강의와 컨설팅으로 이름을 알렸다. "김용태의 마케팅 이야기"(한국경제TV), "김용태의 컨버전스 특강" 칼럼연재(경영시사지 이코노미스트) 등이 있고 서울산업대와 남서울대에서 겸임교수를 했다. 특히 온라인 강의는 경영 분석 사례와 세계 경영 변화 흐름 등을 주로 다뤄 국내 경영계의 주목을 받았다. 주요 강의 내용을 보면 "루이비통 이야기 – 사치가 아니라 가치를 팔라", "마윈의 역설 – 알리바바의 물구나무 경영이야기", "4차산업혁명과 공유 경제의 미래", "손정의가 선택한 4차산업혁명의 미래", "블록체인과 4차산업혁명" 등이다. 저술 활동도 활발하다. "트로이의 목마를 불태워라", "마케팅은 마술이다", "부모여, 미래로 이동하라", "변화에서 길을 찾다", "마케팅 컨버전스", "웹3.0 메타버스", 메타버스에 서울대는 없다(이북), 메타버스와 세 개의 역린(이북) 등을 펴냈다. 서울대 인문대 졸업 후 서울대서 경영학 석사(마케팅 전공)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