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SK 70년' 최종건ㆍ최종현 語錄 유산 (66) 이국의 병상서도 업무 보고 받아

미국서 폐암 진단 받고 귀국했다가 동생 최종현의 강권으로 치료차 도미 했지만 일에 파묻혀 마지막 순간에도 사업에 대한 집념과 열정 불사르려는 듯 불철주야로 뛰면서 입원을 거부해 운명 직감한 듯 수원의 원사,울산의 폴리에스터 섬유 공장 건설현장 찾아 직원과'마지막동행'

2025-11-26     특별기획팀

최종건은 선경직물을 일으켜 세운 다음부터 죽는 날까지 단 한순간도 선경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선경은 그야말로 그의 피와 땀으로 빚은 생에의 작품이었으며, 그 자신이었다.

1973년 4월, 우리나라보다 의료 기술이 발달한 미국에서조차 폐암 진단을 받고 나자, 최종건은 치료를 일절 거부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어차피 고치지 못할 병이라면 남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고, 시간은 한없이 부족했다.

최종건은 한동안 가족에게 병명조차 알리지 않고 경영에 매진했다. 파트너 회사인 일본 데이진의 사장 오야 부부가 내한했을 때, 그는 직접 공장 시찰을 비롯한 각종 행사의 안내역을 담당했다. 6월 동생의 강권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미국에 치료차 떠났을 때도 그는 매일 서울과 연락을 취하며 업무 보고를 받고 지시하고는 했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선경에 가 있었다.

불과 20여 일 만에 서울로 돌아온 최종건은 마지막 생애를 사업에 대한 집념과 열정으로 불사르려는 듯 불철주야로 뛰었다.

그는 진통제로 버티면서도 행여 사업에 악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원을 거부했다.

하지만 9월 이후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최종건은 마지막을 준비해야 했다. 발길이 끊이지 않는 문병객을 감당치 못해 면회를 사절한 어느 날, 그는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몰래 병실을 빠져나와 수원의 원사 공장과 울산의 폴리에스터 섬유 공장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

본 건물 일부가 올라선 현장을 바라보며, 그는 올해 안에 완공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빨라도 내년 봄에나 공사가 끝날 것이라는 에기를 듣고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