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91) 정주영이 쓰는 소파

낡은 것 바꾸려 하자 "누가 정주영 쓰는 소파가 인조가족인줄 알겠어"라며 "그냥 나둬" 호통 신사옥에 전용 엘리베이터 설치 건의 받고"젊은직원이 양보해 타면 그게 중역용이고,회장용"

2025-11-25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빈털터리에서 자수성가한 사람 중 이른바 구두쇠, 자린고비인 사람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정 회장을 구두쇠나 자린고비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가족은 물론 과거 신세 진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씀씀이는 놀랄 만큼 컸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 스타일도 쪼잔하지 않고, 선이 굵었다. 유독 자신에게만 엄격했다. 누구처럼 보여주기 위해 쇼를 한 게 아니다.

서린동에 있던 현대그룹이 계동에 새 건물을 짓고 이사했을 때 얘기다. 비서가 "회장님, 새 건물로 이사하는데 이참에 응접실 소파를 바꾸시죠"라고 권했다. 그때까지 회장실 응접실 소파는 인조가죽으로 된, 낡은 소파였다.

그러자 정 회장은 "이봐, 정주영이 쓰는 소파가 인조가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어? 내가 편하니까 그냥 놔둬"라고 했단다.

사옥을 옮길 때마다 정 회장은 "내 방은 굴뚝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만들어"라고 지시했다. 의아해하는 직원들에게 "내가 살면서 가만 살펴보니까 겨울에 굴뚝 옆에 있는 사무실이 가장 따뜻하더라"라면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정 회장은 사옥에 회장 전용 엘리베이터도 만들지 못하도록 했다. 삼성 등 대부분 대기업은 회장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다. 나름 이유가 있다. 회장과 직원의 동선이 겹치면 회장은 물론 비서실 직원도 불편하고, 일반 직원도 불편하다.

신사옥을 지으면서 임원 중 누군가 "회장님, 중역용 엘리베이터를 한 대 마련하는 게 좋겠습니다"하고 건의했다가 즉석에서 면박을 당했다.

"이봐. 그딴 게 왜 필요해? 엘리베이터라는 건 기다리면 다 타게 돼 있는 거야. 혹시 젊은 직원들이 차례를 양보해서 먼저 탈 수 있으면 그게 중역용이고, 회장용이지."

정 회장은 실제로 직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직원들이 불편하기도 했겠지만, 평소에 신입 직원들과 씨름을 할 정도로 소탈한 정 회장에게 큰 반감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정 회장이 직원들과 똑같이 줄을 서서 기다리지는 않았다. 계동 사옥 시절 점심시간 때 직원들이 서 있는 엘리베이터에 끼어들며 "새치기해서 미안해"라며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는 얘기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직원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고, 환호했다는 얘기도 함께 들리니 이런 회장을 싫어한 직원은 없었던 모양이다.

현대 임직원들은 정 회장의 소탈함을 잘 아니까 이런 걸 두고 더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기업 회장이 너무 초라하게 다닌다며 모두 한마디씩 했다.<계속>

---------------------------------------------------

이코노텔링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